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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Dec 04. 2021

달콤한 도서관

대출

  800명이 넘는 학생들 가운데 수업에 필요한 책 대출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읽고 싶은 책 대출을 하는 학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 번씩 운영하는 행사 참여만으로 대출 권수를 높이긴 어렵기 때문에 책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을 위한 유인책으로 간식을 주는 일회성 행사를 한다.

      

  3월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대출 권수만큼 사탕을 준다. 책 1권을 대출하면 사탕 1개, 2권은 사탕 2개, 3권은 사탕 3개를 준다. 도서대출증(학생증)은 꼭 가져와야 한다. 신입생에게 도서관 대출 이용법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기 같은 얼굴을 하고 제 몸 보다 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졸래졸래 도서관으로 몰려온다. 4월과 9월에는 새로 들어온 책을 대출하면 간식을 준다.

     

  선착순 간식 제공 행사도 한다. 오늘 첫 대출 학생 1명에게 간식을 주고,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는 하루 5명까지 대출 선착순으로 간식을 주고, 빼빼로데이에는 열한 번째 대출자에게 빼빼로를 준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그때그때 남은 간식 양에 따라 선착순 간식 제공 행사를 한다. 이런 날은 도서관 운영 시간 전부터 학생들 몇 명이 도서관 앞에서 기다린다.

      

  불특정 간식 제공 행사도 한다. 학번에 7이 들어가는 학생이 대출하면 간식을 드립니다. 이름에 ㄷ, ㅅ, ㄱ 초성이 들어가는 학생이 대출하면 간식을 드립니다. 이렇게 홍보하면 도서관에 오지 않던 학생들도 책을 대출하러 달려오지만 평소 도서관에 오지 않던 학생들이니 도서대출증이 필수로 있어야 함을 알 리가 없다. 소문 듣고 달려온 학생들 가운데 반 정도는 그냥 돌아간다. 도서 대출 권수만 생각하면 이 학생들을 돌려보내고 싶지 않지만, 도서관 이용법을 알리는 역할은 해야 한다.     

학생이 그린 '학생증(도서대출증) 꼭! 갖고 오세요'


  학생들이 서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게도 한다. 특정 단어를 제시하고 이에 맞는 책을 골라 대출하면 간식을 준다. 학생들은 ‘꿈’과 어울리는 책, ‘친구’와 함께 읽고 싶은 책, ‘나’를 나타내는 책을 대출하고 간식을 받으려고 서가에 있는 책들을 진지하게 둘러본다.

    

  여름방학이면 도서대출 쿠폰을 만든다. 방학 중 책을 대출하는 권수에 따라 간식을 제공한다. 5권이나 10권을 대출하면 배를 채울 수 있는 간식을 준다. 방학 중에는 개인 공부를 하거나 책을 대출하러 왔다가 학원 갈 시간까지 머물다 가는 학생들이 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어중간한 학생들은 도서대출 쿠폰을 유용하게 이용한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인데, 학생들은 마음보다는 입이 즐거워야 한다. 달콤하게 꾀어내고 새콤하게 끌어들인다. 마음이든 입이든 뭐가 됐든 분명한 사실은 도서관 간식 수는 대출 권수에 비례한다. 도서관 간식 곳간을 채우면 채울수록 도서관 운영 1년이 든든하다.




  2014년 겨울 방과 후, 고정으로 도서관에 오는 학생 몇 명이 있었다. 겨울 방학 직전이라 수업은 일찍 끝났고, 이 학생들 말고는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이 없었다. 밖에 바람은 강하게 불고, 공기는 차갑고, 나를 포함해서 다들 배가 고팠다. 마침 도서관에는 컵라면이 있었다. 우린 팔팔 끓는 물을 컵라면 용기에 따르고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라면이 익을 동안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라면을 먹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며 만족했다. 뜨끈한 국물로 따뜻해진 온기를 오래 느끼지 못하고, 라면 냄새가 빠질 때까지 도서관 창문을 활짝 열어 추위에 다시 떨었지만 학생들은 즐거워했다.

  도서관에서 먹는 즐거움이 도서관과 책을 가까이하는 원천이 되었기를 욕심내 본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배가 불러야 마음의 양식을 기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먹는 컵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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