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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Dec 31. 2021

따뜻한 이불 같은 사서

적성

  최근 출간한 많은 진로 도서들이 있지만 2009년에 출간한 《한 권으로 보는 그림 직업 백과》 책은 읽기가 쉬워 학생들이 즐겨 읽는다. 이 책에서는 사서 직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도서관이나 자료실에서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도와요. 사서는 서적이나 정기 간행물, 시청각 자료 등을 수집하여 분류·정리해서 보관하는 일을 하며, 자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책을 보거나 빌려 갈 수 있게 도와줘요.

-글 조은주·유수정, 그림 마정원 《한 권으로 보는 그림 직업 백과》 (진선, 2009), 166.


  167쪽에서 사서는 기록과 수집을 좋아하며, 기억력과 꼼꼼함, 서비스 정신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어릴 때부터 기록하기 좋아하고, 기억력이 좋고 꼼꼼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었으니 적성을 살린 직업을 잘 선택했다고 볼 수 있을까. 홀랜드 진로 적성검사 결과는 관습형이고 MBTI 결과는 ISFJ 유형이다. 관습형과 ISFJ 유형 대표 직업 안에 사서가 있으니 적성을 살린 직업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ㅈ선생님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다. 새로 들어온 책 중에서 그 작가 책이 있는지를 꼭 확인했고, 없으면 읽었던 책을 다시 대출해 갔다.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인근 공공도서관 행사를 안내받기도 하는데, 마침 이 선생님이 좋아하는 작가 작품을 주제로 하는 행사가 있었다. 선생님에게 바로 알렸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천직이군요!”


  도서관에는 또래와 어울리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온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혼자 책을 읽거나 나랑 대화한다. 허언이 심한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학생이 하는 말들이 모두 진실인 줄 알았는데 학생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본 ㄱ선생님이 넌지시 말했다. 저 학생이 하는 말 중 반 이상은 거짓이니 다 믿지 말라고. 그리고 도서관에 올 때마다 외로운 학생들과 대화하는 나를 보고 느꼈다며 한 마디 덧붙였다.

  “따뜻한 이불 같은 사서 샘이 있어 좋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해서 만족도가 높지만, 무엇보다 필요함은 일을 대하는 마음이다. 마음을 다해 일하면 그 마음이 전해져 내게 다시 돌아온다. 처리할 일이 많아 힘들고 지친 나를 보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들은 모니터에 응원 쪽지를 남긴다. 몸살감기가 났을 때는 아프지 말라며 쪽지를 남긴다. 바빠 보이는 내게 힘을 내라며 쪽지를 남긴다. 학생들 마음이 온전히 나에게 배어든다.

응원 쪽지
기운 나는 쪽지


  이번 주에 2022년 정기 전보 계획 알림 공문이 왔다. 대상자이다. 8년을 내 집처럼 가꾸고 보살핀 도서관인데 떠날 수 있을까. 도서관을 자주 찾던 학생들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종업식이고 코로나 상황으로 학생들은 들쑥날쑥 등교한다.

  언제나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궁금한 점을 깍듯이 질문하던 학생이 있다. 어제 마지막 인사를 했더니 “올 때마다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도서관이 좋았어요. 질문마다 잘 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오늘 과자를 한 움큼 쥐고 와서 전하고 간다. 이런 마음들을 두고 어떻게 떠날까.


  오늘 교직원 연수 때 선생님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기 전부터 우는 나를 보고 ㅇ선생님이 말했다. "애정이 많았네요. 마음을 다해 일하셨나 봐요." 그랬나 보다. 8년 전, 학교도서관 사서가 정말 되고 싶었던 꿈을 실현해준 첫 학교도서관이어서 마음을 다 주었나 보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온 마음이야말로 사서에게 가장 알맞은 적성 아닐까. 마음을 기르고 길러 따뜻한 이불 같은 사서로 살아가고 싶다.











학교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을 중심으로 쓰는 글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사진 속 '갈게용♡'은 언젠가 저를 기다리던 학생이 남기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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