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재 Apr 20. 2021

사서, 사람과 책을 서로 잇다

열람·대출봉사와 참고봉사

  기차를 좋아한다. 20대 중반 서울로 취업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이면 기차를 주로 타고 안동에 다녀왔다. 무궁화호로 3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곳.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기차 안에서는 허기를 달래거나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을 땐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아무 생각 없이 있기 딱 좋은 시간이다.


  2년 전인가. 안동 가는 기차 시간이 남아서 청량리역 맞이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마음을 잇다, 당신의 코레일’ 문구. 검색해보니 코레일 서비스 슬로건이더라. 참 잘 지었다 싶었다. 잇다. 길게 줄지어진 기차 상징도 있고, 서울과 안동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을 넘어 마음 거리도 이어주는 느낌이었다.


  잇다. 그날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잇다’ 단어만 계속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와 있는 마음을 따듯하게 안아주는 단어였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나, 타지에서 사서로서 살아가는 나, 집 이사를 3번이나 할 동안 8년간 나를 받아주고 있는 직장 도서관. ‘잇다’는 도서관까지 스며들었다.

 

  도서관을 대표하는 자료는 단연코 책이다. 전자책, 오디오북, DVD 등 다양한 비도서 자료가 많이 등장했지만,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질인 책이 아직 강렬하다.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도서관을 찾고, 책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책을 사람들이 한층 더 쉽게 이용하도록 사서는 자료를 수집, 등록, 보존, 관리한다. 사서는 사람과 책을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서야말로 ‘잇다’는 단어가 적확하게 쓰일 수 있는 직업 아닐까. 그날 마음을 이어주는 기차 안에서 사서 슬로건을 만들었다. 사실 '잇다'는 단어를 이용하는 도서관이나 서점이 많아서 내가 만든 특별한 사서 슬로건이다고 볼 수는 없다. 흔하지만 나는 나대로 의미를 불어넣었다.

  사서, 사람과 책을 서로 잇다. ‘사’와 ‘서’ 글자에 방점을 둔다.

한글 서예가 최루시아 선생님 글씨


  도서관에서 사람과 책을 직접 잇는 업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용자가 자료를 읽거나 대출반납하도록 지원하는 열람·대출봉사와 이용자 질문에 따라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참고봉사이다.  


  학교도서관 열람·대출봉사 내용은 해마다 비슷하다. 권장도서, 진로도서, 신착도서, 교과 관련 도서, 대출 인기도서 등 찾고자 하는 자료 위치나 대출 가능 여부 정도이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도서들은 청구기호를 외우고 있거나 서가 위치를 거의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 업무는 수월하다. 2만 권이 넘는 책들 사이에서 학생이 찾는 책을 한 번에 쏙 찾아오면 학생은 “우아!”하고 감탄한다. 책이 그냥 그 서가에서 변함없이 있었을 뿐인데, 책 덕분에 내가 신이 되는 순간이다. 


  참고봉사는 학생들 질문과 요구에 따라 정보를 찾는 속도가 다르다. 다음은 실제 학생들 요구 내용이다. 자기소개서 작성에 도움이 되는 책, 독서기록장에 쓰기 좋으면서 읽기 쉬운 책, 원하는 진로 분야 이론서가 아닌 생생한 업무 이야기가 담긴 책, 이왕이면 시험 범위 내용이 들어있는 역사 소설책을 찾아 주세요. 이 요구들은 객관성이 강한 편이라 짧은 시간 안에 찾을 수 있다.


  나를 헤매게 하는 요구는 감정을 찾는 책이다. 한 학생이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슬픈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세상에 슬픈 책은 많지만 내가 읽고 울었다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울 리는 없지 않은가. 내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학생 눈에서 눈물이 꼭 나게 해주겠다고 하는 압박감 때문인지 이런 요구가 어렵다. 


  참고봉사를 하는 시간만큼은 요구한 그 사람만 생각한다. ‘이 자료가 맞을까?’, ‘이 자료가 어렵지는 않을까?’들. 사서는 이런 시간이 모이고 모여 사람과 책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되는가 보다.

  사서, 사람과 책을 서로 잇다.


 

+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슬픈 책을 찾던 그 학생은 《몽실 언니》를 읽고 울었단다. 친한 국어 선생님 도움까지 받아 《가시고기》, 《숨결이 바람 될 때》,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준비했다. 《몽실 언니》를 읽고 울었다기에 전쟁 후 이야기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선택하리라 예상했지만, 그 학생은 유품 정리사가 전하는 이야기인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대출해 갔다. 이 책을 읽고 그 학생이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울었는지는 알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