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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Dec 31. 2021

도서관 사각지대 보물

서가배열

  2016년 리모델링 이전 학교도서관은 낡은 서가와 오래된 책걸상으로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했다. 대출반납대와 서가 위치상 사각지대도 많았다. 대출반납대는 도서관 입구에 있고 ㄱ자로 꺾어 들어가면 서가가 있었다. 대출반납대에 앉아 있으면 서가 안쪽에서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였다.


  과자 봉지 소리가 들려서 서가 안쪽으로 가보면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과자를 먹고 있다. 책 읽을 때 과자를 먹으면 책에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손에 묻은 과자 기름이 책에 묻는다. 다 같이 읽는 책이니깐 깨끗하게 이용하자고 말하면 “네.” 하고 과자 봉지를 각자 주머니에 바로 넣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돌아서면 다시 또 과자 봉지 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과자를 눈앞에 두고 참지 못하는 중학생들이다. 과자를 몰래몰래 먹은 학생들은 도서관 사각지대에 그 흔적들을 남기고 갔다. 책 사이와 서가 위에 과자봉지를 숨겼다. 지금은 먹고 있던 과자는 보관하고 있다가 도서관 나갈 때 돌려준다고 하고 가져오지만, 그때는 이런 생각을 못 했던 초보 시절이었다.

책과 책 사이에 있는 과자 봉지
책으로 가린 과자 봉지


  학생들은 과자 봉지만 숨기지 않았다. 책도 여기저기 숨겼다. 도서관 사각지대에 있는 서가에서 보물찾기하듯 책을 마음껏 숨기고 찾으면서 놀았다. 책을 숨겼다가 종소리가 들리면 그대로 도서관 밖을 빠져나갔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가 보물찾기해야 했다. 서가 위, 서가 아래, 서가 선반 사이에서 책을 찾았다. 제자리에 없는 책은 보물처럼 꼭꼭 숨겨놓은 책이었다.

서가 위에 있는 책과 쓰레기


  낡은 서가는 선반을 지지하는 핀이 툭하면 빠졌다. 핀이 빠지면서 선반이 기울고 그 선반에 있는 책들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반을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책이 떨어졌다. 서가에 기대어 이야기하던 학생들은 하루 한 번은 책을 떨어뜨렸고 떨어진 책들을 대충 쌓아뒀다. 구석진 서가에 있던 학생 중에는 책등이 위로 가게 방향을 바꿔놓거나 책등이 아래로 가게 방향을 바꿔놓기도 했다.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노는 학생들이었다.

대충 쌓은 책
꽂는 방향을 바꾼 책


  학생들은 과자봉지를 숨기려고 책 배열을 뒤섞었고 보물찾기 놀이를 한 책들은 청구기호와 상관없이 아무 곳에나 뒀다. 서가에서 떨어진 책들은 청구기호 순서가 엉망이었다. 학생들이 돌아가고 나면 이런 책들을 서가에 다시 배열한다. 문헌정보학 용어사전에 따르면 ‘서가배열’은 서가상의 적정 위치에 도서를 배열하는 작업을 말한다. 짓궂은 학생들이 많을수록 작업량이 늘었다.


  학교도서관 리모델링을 하면서 낡은 서가 교체와 사각지대를 최소로 했다. 튼튼한 철제 선반 서가가 도서관에 들어왔고 도서관 출입구를 바꾸고 대출반납대 위치도 이동했다. 대출반납대에 앉아서 볼 수 있는 시야가 훨씬 넓어졌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있다.

 

  대출반납대에서 가장 먼 서가 안쪽으로 학생들이 자주 모인다. 바닥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면서 손이 심심한 학생들은 책을 한 권 한 권 뺐다 꽂았다 한다. 왜 이렇게 했냐고 물으면 재미있어서 했다고 대답한다. 이 또한 책과 노는 방법인가. 도서관 사각지대에 있는 서가일수록 장난친 책들이 많고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들이 많다. 학생들이 책과 노는 시간이 지나면 서가배열을 해야 한다.

장난친 책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자음과 모음 순서를 확인하며 한 권씩 배열하는 동안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 가운데 끌리는 제목이 있으면 잠시 멈춰 책을 펼쳐 본다. 그러다가 누군가 끼었을 책갈피를 발견하고, 친구한테 쓴 편지를 발견할 때도 있다. 천 원짜리 지폐도 발견하고, 바싹 마른 낙엽도 발견한다. 도서관 사각지대에서 놀던 학생들이 진짜 보물을 숨기고 갔다.

책 속에서 발견한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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