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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Jan 14. 2022

어머니가 어머니가 된 날

어머니 음식 만드는 방법

  1985년 한겨울, 만삭인 새댁이 안동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갓 결혼한 남편은 타국에서 돈벌이하고 있었고 피치 못할 상황에 새댁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을 다녀와야 했다.

  서울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에 양수가 터졌다. 새댁은 타국에서 고생하는 남편 생각에 병원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집에서 출산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다. 진통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 4시 더는 버티기 힘들었던 새댁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진통이 올 때는 허리와 배가 비틀려 끊어질 듯이 아팠고 진통이 잠시 멈출 때는 잠이 미치도록 쏟아졌다. 진통과 잠과 싸우기를 반복하던 새댁은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딸을 출산했고 막 태어난 갓난아이는 양수를 많이 먹어서 일주일 동안 입원해야 했다.


  1985년 한겨울, 어머니는 그렇게 어머니가 됐다.






  남들 다 걸리는 몸살감기에도 한 번씩 보이는 소화 불량에도 어머니는 내가 양수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걱정하신다. 날 낳을 때 병원을 빨리 갔어야 했다고 한탄하신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어머니 걱정은 여전하다.

  어머니 걱정을 더는 방법은 그저 ‘밥 잘 먹기’이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님 곁을 떠났고 결혼하여 새 가정을 이루고 있는 다 큰 딸인데도 끼니를 혹여나 거를까 부실하게 먹지는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통화를 할 때면 오늘 뭐 먹었는지를 꼭 물으신다.

  때마다 쌀,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된장, 제철 채소, 과일들을 택배로 보내신다. 서울에서 살 수 있다고 해도 안동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와는 다르단다. 농사짓는 친척으로부터 받은 쌀과 과채류, 직접 깨끗하게 씻고 다듬어 방앗간에 맡긴 기름류와 가루류, 집에서 담근 장류들까지. 퇴근하고 와서 지친 딸 손이 조금이라도 덜 가게 종류별로 깔끔히 정리해서 보내 주신다.

다진 마늘
제철 채소, 들기름, 참기름, 고추장
자취 시절 냉동해서 보내주신 된장찌개

  어머니 걱정을 더는 확실한 방법은 ‘밥 잘 먹기’가 아닌 ‘밥 잘 해 먹기’이다. 어머니는 내가 자취를 시작했을 때 된장찌개, 미역국, 소고깃국, 돼지고기볶음, 카레 등 냉동이 가능한 음식들을 만들어 주셨다. 안동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주말이면 밑반찬을 만들어 손에 들려 보내셨다.

  결혼하면 평생 음식 만들고 설거지해야 하는데 뭣 하러 벌써 하느냐며 부엌일 하려는 나를 말리셨고, 그 작은 손으로 무엇을 하겠냐며 내가 하는 미미한 움직임도 아까워하셨다. 이리도 곱디곱게 키운 딸이 자취한다고 하니, 사과도 못 깎는 딸이 혼자 살면서 해 먹으면 얼마나 해 먹을까 싶어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질 않으셨다.

  언제까지나 안동 갈 때마다 부엌에 있는 어머니 뒷모습만 볼 수는 없었다. 음식을 포장하고 택배를 보내는 고생도 그만하셨으면 싶었다.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음식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이제는 내가 만들어 보겠다고. 십여 년 전 어머니와 나는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았다. 어머니가 음식 만드는 방법을 불러 주시면, 나는 한글 문서에 입력했다.

미역국

맹물에 미역을 불린다(한 시간 정도)
깨끗하게 씻고 건져서 물기를 빼고
참기름 붓고 미역과 소고기를 달달 볶는다
쌀뜨물 있으면 쌀뜨물 이용, 없으면 그냥 맹물
굵은소금 살짝, 집간장 살짝
푹~ 끓인다


소고깃국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다가
무 나박 썰어서 같이 볶는다
파, 양파, (물에 불린 토란 또는 물에 불린 고사리)
쌀뜨물 있으면 쌀뜨물 이용, 없으면 그냥 맹물
고춧가루, 마늘, 굵은소금, 집간장
푹~ 끓인다


비빔국수

물이 끓으면 국수를 넣고, 넘치는지 꼭 확인
국수 익으면 찬물에 헹궈 팍팍
소쿠리에 건져
양념 버무린다. 양념은 미리 해라.
양념-(호박 볶음+달걀 1개 풀어서 뚜껑 덮으면 달걀이 익어요+오이 채 썰고) 고추장 살짝, 고춧가루 살짝, 식초 살짝, 설탕이나 꿀 살짝
어머니 음식 만드는 방법

  어머니가 음식 만드는 방법에 정량은 없었다. 살짝 넣기, 진짜 조금만 넣기, 바글바글 끓이기, 푹 끓이기. 정량을 알려달라고 하면 그냥 살짝 넣으면서 간 보면 된다는 어머니였다. 그 투박함에 크게 웃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가 하는 음식과 같은 맛을 낼 수 있겠냐고 물으니 하다 보면 된단다. 어머니 말투를 살려 한글 문서에 그대로 입력하고 인쇄한 ‘어머니 음식 만드는 방법’은 자취방 서랍장부터 결혼 7년 차 주부가 사는 부엌까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는 일이 힘들 때면 어머니에게 묻는다. 이 많은 일을 혼자 어찌 다 하셨느냐고. 그러면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일이 뭐가 힘드노. 그게 기쁨이고 행복이지.” 하신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 정해진 양이 없듯이 정량 없는 어머니 음식 만드는 방법이 좋다.


  어머니는 늘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난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모든 자식이 그렇지 않을까.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밥이고, 가장 먹고 싶은 밥이다.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고, 어머니처럼 밥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한다.

  ‘어머니 음식 만드는 방법’을 따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하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어머니 음식 만드는 방법’을 펼쳐서 음식에 깃든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를 낳던 날을 떠올릴 때면 어머니가 하는 말이 있다.

  “그케그케 삐쳐. 새벽 4시에 병원에 갔는데 10시까지 아이고, 그케 삐쳐.”

  (“그렇게 느려. 새벽 4시에 병원에 갔는데 오전 10시까지 아이가 나올 생각을 안 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느렸던 아이는 마음은 급하지만 행동은 느린 사람으로 자랐다. 손이 느려 재료 손질이 느리고, 밥 짓기도 느리고, 밥 먹는 속도도 느린 사람인지라 어머니 이야기 쓰기도 느릴 것이다.

  어머니 이야기는 천천히, 찬찬히, 쓰고 싶기도 하다.

바로 먹으면 맛있는 감과 시간을 두고 먹으면 맛있는 감을 분류해서 보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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