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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Sep 12. 2022

여름 맛을 보내는 때

빡빡 된장

  이모에게 호박잎을 받았다. 촌수를 따지면 어머니의 사촌 언니니까 오촌 당이모 또는 종이모인데, 편하게 이모로 부른다. 어린 시절부터 이모는 서울에서 이모 오셨다고 하면 뵈었던 ‘서울 이모’였다.

  이모는 내가 서울에서 자취할 때부터 나를 챙기셨다. 아니 자취방을 구할 때부터 도움을 주셨다. 서울 지리를 알 리 없는 부모님에게 이 동네 저 동네 정보를 알려주셨고 더 도울 일 없나 하고 연신 전화하셨다. 자취방은 이모 댁에서 4~5km 떨어진 곳이었는데, 운전을 하지 않는 이모는 먹을거리를 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와서 자취방에 던져주고 가셨다. 말 그대로 툭. 머물다 가면 부담이라도 줄까 싶어 “해 먹어라.” 하고 툭. 또 어느 날은 퇴근하는 나를 이모 댁으로 불러 안방 돌침대 온도를 높이고 나를 다짜고짜 눕히고는 거실로 나가셨다. “서울살이 힘들지. 한숨 자라.” 보일러가 뜨끈하게 돌아가는 방바닥 생활을 하다가 자취방 침대에서 시린 잠을 잤던 나는 순식간에 깊이 잠들어 버렸다. 얼마간 잠을 자고 깬 내게 이모는 저녁을 먹이고 밤늦기 전에 자취방에 돌아가라며 손에 밑반찬을 들려 보내셨다.


  이후 결혼하고 전셋집을 두 군데 전전하다 지금 아파트로 이사 왔다. 이모가 사는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 어머니는 안심과 함께 걱정하셨다. 이모한테 부담을 줄까 싶어서. 이모 성격에 자취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챙기지 않을 거라고. 어머니는 이모에게 말했다. “언니야. 애한테 마음 쓰지 마래이.” 이모는 답했다. “야야. 나도 나대로 바쁘다. 그럴 새가 어딨노.” 이모는 말과 행동이 달랐다. 이삿날부터 저녁 먹고 정리하라며 족발과 막걸리를 사 오셨다. 계절이 바뀔 때면 서울과 안동에 오가며 직접 키운 제철 채소와 과일을 한가득 주셨고, 명절이 다가오면 한상차림을 차려주셨다. 파김치, 물김치, 열무김치를 때마다 담아 주기도 하셨다.


  매미 소리가 한창이던 날 이모는 호박잎과 깻잎을 주고 가셨다. 호박잎은 내가 좋아하는 여름 음식이다. 안동에서 여름마다 먹던 호박잎을 서울 올라와서는 못 먹고 지나간 해가 많았는데, 이번 여름에는 호박잎을 먹었다.

  몇 년 전 여름, 호박잎을 사려고 마트를 여러 곳 다녔다. 내 눈에만 띄지 않은 건지, 서울에서 호박잎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은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았다. 동네 생협에 호박잎이 들어온다는 알림 문자를 받고 달려갔지만 이미 판매 종료. 서울에선 호박잎을 못 먹겠구나. 그렇게 지내는 내게 이모가 호박잎을 건네고 가셨다. 그것도 안동 흙이 묻어있는 호박잎.


  호박잎. 호박잎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 생각해보니 맛도 맛이지만 무더운 여름날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서 나던 호박잎 향과 어우러진 구수한 된장 냄새 기억이 좋아서인듯하다.


  푹푹 찌는 여름에 어머니는 가겟방에 앉아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내가 집에 오는 걸 아셨다. 타아악, 타아아탁… 힘이란 힘은 다 빠진 소리. 어머니 말을 그대로 옮기면 매가리 하나 없이 다 죽어가는 발걸음 소리.

  더운 여름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중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힘들었다. 집에 오는 내내 누군가 머리 위에서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름 교복은 왜 그리도 칙칙한 갈색이었는지. 얼굴을 더 지쳐 보이게 만들었다. 초등학생 때도 그랬다. 우리는 체육복 색깔을 고무대야색 같다고 했는데, 날이 더울 때 그 체육복만 입으면 얼굴에 그나마 남아있던 생기마저 모두 뺏겨버렸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가까웠지만, 낙타고개라고 하는 가파른 언덕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언덕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머니는 죽상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 내 얼굴을 싫어했다. 기운 넘쳐야 할 사춘기 애가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짓고 다닐 수 있냐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물콘 앞에 앉히고 냉장고에서 미리 갈아두었던 토마토를 꺼내 주셨다. 물콘은 지하수를 이용한 냉각기다. 물콘 앞에 앉아 토마토 주스 한 잔을 마시고 나면 그제야 된장 냄새가 났다. “된장 냄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맞바람이 불어야 시원하다며 가겟방 앞뒷문을 열고, 형광등 불빛조차 뜨겁다며 방에 불을 끄셨다. 그리고 상 위에 다른 반찬 없이 찐 호박잎과 된장을 차려 주셨다. 그러면 나는 집에 오는 동안 태양에 뺏긴 기운을 모조리 되찾아오겠다는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구수한 된장과 향긋한 호박잎. 그거면 충분했다. 배가 차오르면 가겟방에 있는 나무 계단 아래에 들어가 등을 기댔다. 호박잎에서는 풀 내음이 나고, 가겟방 문 사이로는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고, 그곳은 마치 커다란 나무 그늘 같았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도 찐 호박잎에 된장을 싸 먹을 때만큼은 이래서 여름이 좋다고 생각한다. 호박잎 제철은 7월부터 10월까지인데, 내게 호박잎 먹는 적기는 여름이어야 한다. 여름이 지나가면 이상하리만큼 생각나지 않는다. 이모는 여름 끝자락에 한 번 더 호박잎을 주고 가셨다. 안동에서 따자마자 서울로 바로 올라오셨단다. 밭에서 갓 딴 흙내음이 났다.


  호박잎을 찌고 된장을 끓였다. 된장은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빡빡 된장. 어머니는 이 된장을 빡빡 된장이라고 했다. 서울 올라온 초반에 호박잎을 주는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상 위에 빡빡 된장은 없고 강된장이라고 부르는 된장이 있었다. 되직하게 끓인 된장을 말하는 강된장은 어머니가 만들어 준 빡빡 된장과 닮은 듯 달랐다. 강된장은 내 입안에서 호박잎과 조화롭게 어울렸던 빡빡 된장 맛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파는 강된장은 가겟방에서 먹던 여름 맛을 전혀 전해주지 않았다. 그날 밤 빡빡 된장이 몹시도 그리웠다. 죽상을 하고 온 딸이 더위를 식히고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 딸 얼굴이 이제야 밝아지네.” 하며 웃던 어머니 얼굴이.


  어머니는 내 얼굴빛을 항상 살폈다. 입이 삐죽 나올 때면 어머니는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우리 딸, 웃어라. 이렇게 웃자.” 하면서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셨다. 이렇게 따라 해보란 듯이. 삐칠 때면 눈앞에서 과일을 깎으며 “맛있다. 달다. 딸, 먹어볼래?” 하셨고, 토라진 나는 안 먹겠다고 괜히 징징거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내 입 안에 과일 한 조각을 집어넣으셨다. 어쩔 수 없이 한 입 깨물어 먹은 과일은 달았다. 단맛은 기분을 금세 좋게 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내 기분을 살핀다. 이번 여름에도 그랬다. 역시나 더워서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전화받는 내게 “우리 딸한테 여름이 왔구나. 여름 빨리 가라고 혼내줄까?” 하신다. 삼십 대 후반 딸에게 여름을 혼내주겠다니. 싱거운 농담에 웃음이 났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는 이즈음, 저녁을 든든히 먹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여름이 가긴 가나 보다. 우리 딸 목소리가 달라졌네.” 하신다. 여름 내내 통화할 때마다 기운 빠진 딸 때문에 짝사랑하는 마음이 들어 서운했단다. 어머니 혼자만 들떠서 전화하는 것 같았다고. 짝사랑은 재미없다며 가을이 와서 좋단다. 전화 너머 환하게 밝아졌을 어머니 표정이 그려진다.







어머니가 알려준 그대로, 정리하지 않은 조리법

빡빡 된장


된장 2, 고춧가루 1, 멸치 7마리, 다시마 손바닥 크기

양파 1개 다져서

고추 3개

파 2대

표고버섯 10조각

재료보다 물 적게 넣고 5분 끓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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