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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Aug 02. 2022

온전한 마음

어머니 혼수 그릇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어린 시절 앞 소절만 듣고 사랑 노래겠거니 생각했던 〈갑돌이와 갑순이〉. 나중에서야 끝까지 들어보고 한 동네 살던 남녀가 마음을 서로 고백하지 못해 끝내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슬픈 가사임을 알았다. 대중가요인 줄 알았던 이 노래는 구전 민요를 민요 전문 가수가 불러 유명해졌다고 한다. 갑돌이는 용기가 부족했던 걸까. 갑순이가 수줍음이 많았던 걸까. 둘 사이에 신분 차이가 있었거나 집안끼리 원수였을까. 둘 중 한 명이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면 노래 결말은 달라졌을 텐데. 내가 아는 어느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갑돌이는 시내에 있는 옷 가게에 날마다 들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옷을 고르는 척하며 일하고 있는 갑순이를 힐긋힐긋 바라봤다. 갑순이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왜, 매일 허리띠만 만지작거리고 나가는 걸까.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들을 건사해야 했던 네 남매 맏이 갑순이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버스표를 팔았고, 이 가게 저 가게 점원으로 일자리를 옮겨 다녔다. 옷 가게도 그중 하나였다. 생활전선에 일찍 뛰어들었던 갑순이는 오직 일만 했다. 일만 하느라 남자, 연애, 사랑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이런 갑순이에게 매일같이 오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짜장면 한 그릇 먹자고. 짜장면을 왜 먹자고 하는지 알 리 없는 갑순이는 그를 무작정 따라갔다.


  짜장면 한 그릇에는 갑돌이 고백이 담겨 있었다. 갑순이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면발을 한 올 한 올 휘저으며 고백을 곱씹어 생각했을 테다. 갑돌이는 다음 날도 옷 가게에 왔고, 그다음 날에도 왔다. 갑순이는 갑돌이가 오면 그를 따라나섰다. 남녀가 유별해 서로 붙어 다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올까 걱정이었는지, 갑순이는 누가 볼세라 갑돌이와 열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천천히 따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갑돌이 발자국 위에 갑순이 발자국이 포개어 남겨졌다. 갑돌이에게 맞춰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갑순이 마음에도 갑돌이가 서서히 들어왔다.


  노랫말처럼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다. 함께 밥 먹는 날이 많아지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갑돌이는 오토바이 뒤에 갑순이를 태우고 거리를 달리며 소리쳤다. “갑순아, 나랑 결혼하자.”

  가장 노릇 하는 맏누이를 향한 의존심인지 아니면 갑돌이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갑순이네 식구들은 갑순이를 갑돌이에게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도 갑돌이는 꿋꿋했다. 갑순이가 보고 싶어서 갑순이 마을에 찾아갔다. 갑순이네 집 마당이 잘 보이는 곳에 올라가 부엌에 있는 갑순이를 몰래 보곤 했다. 한번은 갑순이네 식구에게 들통이 나서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갑돌이가 아니었다. 몸집이 작은 갑돌이는 체격이 건장한 매제를 데리고 갑순이네 집으로 갔다. 매제는 또 왔다고 갑순이네 식구한테 매질을 당하거나 싸움이 벌어질 일에 대비한 지원군이었다. 듬직한 지원군을 믿고 갑돌이는 갑순이네 식구들을 향해 외쳤다. 보고 싶은 사람 당당하게 보게 해 달라고. 갑순이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명절 때면 할머니는 “니 아바이가 결혼하려고 애 많이 썼다.” 하며 부모님 결혼 배경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러면 옆에 있던 친척 어른이 말을 거들고 나섰다. 멀찍이 있던 또 다른 친척 어른도 어느새 할머니 옆에 바짝 앉아 한마디 보탰다. 누군가는 싸움이 났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둘이 도망을 쳤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원본 없는 구전 민요처럼 들렸다.

  이야기가 한창 흥미로워질 때쯤이면 아버지는 “그만 하소. 애들한테 별소릴 다 한다.” 하고 이야기를 끊으셨다. 어머니는 친척 어른들이 하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셨다.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붙잡고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조르면 “뭘 자꾸 묻노.” 하며 자리를 뜨셨다.


  짤막하게 전해 들은 조각난 이야기에 부모님을 구전 민요 〈갑돌이와 갑순이〉 속 주인공으로 내밀어 깁고 더해봤다. 이 글을 읽은 부모님은 분명히 “뭔 엉뚱한 소리를 해 놨노.”, “있지도 않은 일을 그래 써 놨노.” 하며 내게 전화를 바로 걸 테지만, 아무렴 어떨까. 구전인데. 말에서 말로 전해지면서 부모님 결혼 배경 이야기는 변형되었을 수 있지만, 마음은 온전하다.


  십여 년 전 부모님은 감나무가 있는 구옥을 사셨다. 구옥은 허물고, 감나무는 살리고, 꿈꿔오던 집을 지으셨다. 감나무를 중심으로 영산홍, 백일홍, 가시오갈피, 장미 나무를 심으셨다. 장미 나무는 5월이면 붉은빛을 뿜어내느라 해마다 바쁘고, 부모님은 장미꽃이 활짝 폈다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작년 봄에도 장미꽃을 기대하며 5월을 맞이하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가지치기하다가 생각보다 더 많은 가지를 자르셨다.


  "너 어머니한테 쿠사리(핀잔) 먹었데이."

  "무슨 일로요?"

  "장미 가지 많이 쳤다고."

  "얼마나 치셨나요?"

  "1m 정도 쳤다."

  "왜 그렇게 많이 잘랐어요?"

  "하다 보이 그렇게 됐지 뭐. 큰일 났다 싶어가 모른 척 둘라 그랬더니만, 위에서 목소리가 들리잖아. 그걸 그리 많이 자르면 어쩌냐고."

  "어머니가 창문으로 보고 계셨군요."

  "그이 말이다. 누가 보고 있을 줄 알았나. 장미 몇 송이는 못 보게 생겼다고 난리다."

  많이 잘라버린 장미 가지를 은폐하려 했던 아버지 계획은 그렇게 무산됐다.


  이 일은 장미꽃이 한두 송이씩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잊혔고, 얼마 뒤 아버지는 가족 단톡방에 사진 한 장과 톡을 보냈다. '숨은그림찾기... 예쁜 장미 찾아 보세용...ㅋㅋ'

  사진 속에는 집 앞을 붉게 물들인 장미와 창밖을 내다보는 어머니 얼굴이 찍혀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잘려 나간 장미보다 더 예쁜 장미가 있었다. 아버지 눈에는 어머니가 변함없이 예쁘다.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집에 필요 없거나 자리 차지 많이 하는 물건을 버렸다. 하루는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어머니가 그릇장을 정리하고 계셨다. "뭔 그릇이 이리도 많은지. 니네 다 나가서 이제 이 그릇들 다 쓰지도 못한다." 하며 버릴 그릇을 빼놓으셨다. 나도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그릇을 집어 빼놓은 그릇들 위에 쌓으려는데, 어머니가 "그건 안 버려. 그게 얼마나 단단하고 좋은데." 하신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 식탁 위에서 보던 그릇이다. 어머니가 결혼할 때 장만했다는 혼수 그릇. 흠도 잘 안 나고, 깨지지도 않고, 살 때 돈 좀 줬다는 그릇.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저 장점이 많은 그릇. 그런데 내가 결혼하고 보니 아니었다. 혼수 그릇은 그저 그런 그릇이 아니었다. 딸을 보내는 엄마 마음, 사랑 맹세, 잘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에게 이 그릇 중 몇 개만 달라고 하여 신혼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이 그릇들은 의미가 있어서 못 버리죠?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어머니는 "사랑은 무슨."이라며 피식 웃으셨다.

  사랑이든, 굳은 다짐이든, 차마 쉽게 버리지 못하는 그 어떤 마음이 어머니 혼수 그릇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40년 가까이.


어머니 혼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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