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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Nov 12. 2022

욕실에 갇혀 울었던 날

카레

  자취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들떠 있었다. 오후 9시만 되면 빨리 들어오라던 전화가 없고, 늦잠을 자도 깨우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인이 되었다는 기쁨도 있었다. 내가 번 돈으로 옷 사고, 공연 보고, 여행가는 날들이 즐거웠다. 첫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퇴사하고 다른 곳에 취업했으나 두 번째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평생교육기관을 찾아 다녔는데, 주어진 업무가 대개 학습자 모집 영업과 수강료 회계 처리였다. 몇 개월 동안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다가 ‘공공도서관 행정 인턴 11개월 계약직’ 공고를 봤다. 도서관은 평생교육 범주에 들어가는 기관이고, 어릴 때 꿈이 사서였던 터라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합격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평균 임금 88만 원 세대’를 다루는 기사들이 빈번히 다뤄졌고, 그 세대에 나도 속해 있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여윳돈이 부족했지만, 도서관 근무는 적성에 맞았다. 일하면서 알았다. 나는 공익성을 지향하는 기관에 더 맞는 사람임을. 수익 창출과 이윤 추구를 위한 곳은 애초에 맞지 않는 직장이었다.

  사서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인턴 계약기간이 끝난 자취 2년 차에 사서교육원에서 1년간 공부만 했다.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조금 모아둔 돈과 부모님 지원금으로 어찌어찌 버틸 만했다. 사서 자격증만 있으면 안정된 자리에 취업이 금세 되리란 확신으로 1년을 보냈다. 오만이었다. 뉴스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점차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됐다. 청년 실업자로 월세만 내고 있을 수 없어 자취방을 빼고 안동으로 내려갔다.


  눈 뜨면 채용 공고 사이트를 뒤적이고, 기관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는 날이 몇 달째 이어졌다. 서울에 면접 일정이 잡히면 친구 자취방에서 신세를 지며 면접을 보러 갔다. 계속되는 탈락에 눈을 낮췄다. 정규직 아닌 계약직에 지원했다. 계약직 자리도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하루하루가 쓰디쓴 탕약 같았다. 감초는 한 줌도 들어있지 않은 최고도로 쓴 탕약.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걸까, 내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걸까, 내가 쓸모없는 존재인 걸까. 어두운 상념에 빠져 구덩이를 파고 또 파고 들어가다가 더 이상 팔 곳이 없을 즈음 서울에 있는 ‘기업체 자료실 2년제 계약직’ 자리에 취직했다. 이십 대 후반이었고,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안암동에서 자취하며 자주 오갔던 성신여대입구역 인근에 방을 구했다. 자취생활 제2막이 시작됐다.


  이십 대 후반은 사회 초년생에 비해 자유롭게 놀기 좋은 나이였다. 결혼한 친구가 얼마 없고, 일찍 취업한 친구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안정을 취했다. 화장하고 옷 사고 자신을 꾸미기에 좋은 나이였고 예쁜 나이였다. 사람을 많이 만나기도 좋을 때라 날마다 놀면서 돈을 쓰다가 생활비가 부족하면 어머니에게 손 내밀었다. 오만 원만, 십만 원만. 어머니는 돈 관리 잘하라는 가벼운 꾸중을 곁들이며 돈을 척척 주셨다. 그래서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누구는 우리 나이에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했고, 누구는 젊을 때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고 했다. 월급을 아무리 쪼개도 명품 가방 살 형편은 못 됐다. 해외여행은커녕 친구들과 국내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니에게 지원받는 액수가 점점 늘어났다. 염치가 뭔지 몰랐다.


  언제나처럼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태달라는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소리를 버럭 치셨다.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남매를 키울 때도 큰 소리 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어머니다. “니는 내 사는 거 안 보이나!” 음절 하나하나에 어머니 울분이 꽂혀있었다.

  자영업을 하며 새벽 일찍 문을 열고 그도 모자라 부업으로 화장품 방문 판매했던 어머니다. 가게 물건을 팔다가 화장품 주문이 들어오면 서둘러 배달 다니며 모은 돈으로 딸 자취방 보증금을 마련하고 생활비를 보태고 계셨다. 직장인 딸 생활비를.


  어머니는 많은 말을 하진 않으셨다. 니는 내 사는 거 안 보이나. 이 말에 온갖 부아, 분통, 고됨 같은 낱말들이 농축되어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너무 철이 없고 죄송해서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언젠가 몸과 마음이 지쳐 터진 울음이 그치지 않아 과호흡 상태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그때가 떠올라 눈물을 우선 멈추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샤워하면 나아지겠지. 욕실에 들어가 양치를 먼저 했다. 눈물이 흘러내려 치약 맛이 짜고 매웠다. 나 자신이 미워 욕실 문을 쾅 닫았다.


  닫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 욕실 손잡이 고장 났는데. 문손잡이가 빠지면서 동그랗게 구멍만 남은 상태였다. 집 주인아저씨에게 조만간 말씀드려야지 하고 내버려 뒀었다. 욕실 안쪽에서는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실어 밀어 보고 발로 차 봐도 소용없었다. 욕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어떤 울음이었는지 모르겠다. 갇혔다는 생각에 놀라서 무서웠는지, 어머니에게 죄송해서였는지, 철없는 내가 한심했는지, 적성만 찾고 현실을 못 보는 내가 어리석은지, 돈 낭비한다고 하늘이 벌준 건지, 오만 가지 생각과 감정들로 뒤엉켜 있었다. 그러다 여기 갇혀서 못 나간다면. 어머니와 한 마지막 통화가 못난 딸이어서는 안 됐다. 정신 차리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샤워기로 문을 쳤다. 흠집만 날 뿐 부서지거나 열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손잡이 구멍으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 봤다. 손에 가시만 박혔다. 구멍으로 밖을 향해 외쳤다. “살려주세요. 밖에 아무도 없어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여기 갇혀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배고프면 수돗물 마시자. 몇 날 며칠 나랑 연락이 안 되면 부모님이 올라오실 거야. 며칠만 버티면 구조될 거야. 씻으러 들어간 상태라 알몸으로 구조될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그런 일은 발생해선 안 된다.


  원룸 방음이 약해 평소 욕실에서 들었던 다른 방 사람들 목소리가 생각났다. 욕실 바닥에 있는 배수구에 대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소리치다가 힘이 풀리면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소리쳤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돈 관리 잘할게요, 철든 딸이 될게요, 어머니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제발 저 좀 구해주세요. 제발.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랫집인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나 이제 살았구나. 다행히 원룸 현관문 바로 앞에 욕실이 있었다.

  “욕실 손잡이가 고장 나서, 제가 갇혀 있어요.”

  “잠시만요. 주인아저씨에게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잠시 뒤 주인아저씨가 왔다. 마스터키로 현관문을 열려고 했으나 난 보안을 철저히 중시했던 혼자 사는 여자였다. 삼중 잠금장치를 해둔 터라 마스터키로는 현관문을 열 수 없었다. 주인아저씨는 “이거 참. 난감하네. 119 부를게요. 잠시만 기다려요.”하고 말했다. 곧이어 구급 대원이 도착한 소리가 들렸고, 난 우리나라 119 출동이 정말 빠름을 실감했다.


  구급 대원이 장비를 이용해 현관문을 따고 들어왔고, 욕실 문에 장비를 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제가 씻으러 들어와서 옷을 못 입고 있어요. 밖에 있는 아무 옷이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포감과 죄송함은 잊은 지 오래다. 직면하게 될 창피함부터 피하고 봐야 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건네받은 옷을 입고 욕실 밖으로 나온 나는 주인아저씨 얼굴을 보고 안도감에 또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202호 학생이 윗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서 올라와 봤대요. 얼마나 갇혀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두 시간 정도 흘렀다.

  “두 시간 정도요. 엉엉...”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욕실 손잡이는 곧 고쳐줄게요.”

  옆에 있던 구급 대원들도 많이 놀랐겠다며 물 한 잔을 주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자취방은 괴괴했다. 냉장고와 컴퓨터 본체 팬이 돌아가는 소리에 섞여, 싱크대 선반에 올려둔 비닐봉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봉지 겉에 붙어있던 냉동실 성에가 녹으면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였다. 어머니와 통화하기 전 꺼내 둔 카레가 담긴 봉지였다. 냉동해 뒀다가 한 봉지씩 꺼내 끓여 먹으면 된다고 만들어주신 카레다. 해동이 거의 다 되어 축 늘어진 봉지 속 카레. 뒤범벅된 감자와 당근 그리고 돼지고기가 뒤엉켜 있던 내 감정들 같았다. 또다시 흐르려는 눈물을 대신해 성에가 떨어졌다.



어머니는 늘 특정 식품 회사 카레를 사셨다. 어릴 때부터 이 맛에 익숙해져 다른 회사 카레는 카레 같지 않다.







어머니가 알려준 그대로, 정리하지 않은 조리법

카레


돼지고기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식용유에 볶다가

양파 2개, 감자 2개, 당근 2개 식용유에 달달 볶는다

거의 다 익었을 때, 물을 세 컵 정도 붓고

김이 나면

카레를 부어서 저으면 된다! 약한 불에

저은 후에 약한 불에서 5분 정도 더 끓인다

* 카레는 '오ㅇㅇ 바ㅇㅇ 약간 매운맛 골드'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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