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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Apr 23. 2021

학교도서관 사서로서 살아가는 이유

도서관 이용 학생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둔 도서관 행사가 있다. 매월 특정 주제에 맞는 도서를 선별하고 주제와 연결한 활동을 하는 행사이다. 2019년 9월 주제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역사책과 도서관 탐방 책 다섯 종류를 선별한 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잘 보이는 위치에 전시했다. 책 속 내용 중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부분은 발췌하여 게시했다.


  도서관을 주제로 한 이유는 학생들이 도서관을 친숙하게 느끼고, 도서관이 책만 읽는 곳은 아님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도서관 로망을 심어주고 싶었다.


  내게 있어 도서관 로망을 가장 잘 그려낸 영화는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감독)이다. 와타나베 히로코가 죽은 애인 후지이 이츠키(男) 졸업앨범에 있는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 편지는 죽은 애인과 성별이 다른 동명이인 후지이 이츠키(女)에게 배달된다. 편지를 받은 후지이 이츠키(女)는 와타나베 히로코 부탁으로 어린 시절 또 다른 후지이 이츠키(男)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 끝에 죽은 후지이 이츠키(男)가 후지이 이츠키(女) 자신을 짝사랑한 마음을 깨달으면서 마무리한다.


  기억 속 주 배경은 두 후지이 이츠키가 도서부원으로 활동했던 학교도서관이다. 후지이 이츠키(男) 마음은 도서카드에 진하게 녹아있었다. 도서카드에는 후지이 이츠키 이름이 많이 적혀 있었다. 어린 시절 후지이 이츠키(女)는 그 이름이 후지이 이츠키(男)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 이름이 바로 후지이 이츠키(女) 자기 이름이었음을 도서카드 뒷면 초상화를 보며 알게 된다. 그 초상화는 후지이 이츠키(男)가 몰래 그렸던 후지이 이츠키(女)이다.


  도서관 역사를 담은 책과 도서카드를 함께 전시했다. 근무하는 학교도서관에는 오래된 책이 많다. 그래서 지금은 쓰지 않는 도서카드가 붙어있는 책들이 꽤 있다. 도서카드를 떼어내어 다음과 같은 활동을 했다.



이것은 도서카드입니다.

기기가 발달하기 전 이 카드에 대출자 성명, 대출일 또는 반납 기한을 적고 대출했습니다.

지금은 필요 없어진 이 도서카드 뒷면에 내가 도서관을 찾는 이유를 적어 주세요.

그리고 도서관 풍경을 그려 주세요.

책 읽는 친구들 모습도 좋습니다.

서가, 만화책, 음반 등 도서관 속 모습을 그려주세요♥



  학생들은 도서카드를 신기해하며 저마다 도서관을 찾는 이유를 적거나 도서관 풍경을 그렸다. 점심시간에 진행했던 행사였기에 5교시 예비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도서카드를 제출하고 교실로 부리나케 돌아갔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빈 도서관에서 도서카드 뒷면에 적힌 이유를 읽을 때 눈시울에 눈물이 어렸다.



내가 도서관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서’ 선생님이다 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좀 갑갑한 곳이었지만 사서 선생님의 친절함 덕분에 도서관을 자주 가며 책을 읽게 되었다

사서 샘 보려고 도서관을 찾게 된다

사서 샘이랑 대화하기 위해서

책도 보고 사서 쌤 보러 와요! 헤헤 쌤 사랑해요!

사서 쌤과 같이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어서

예쁘고 착하시고 천사 같은 사서 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서 쌤한테 인사드리러 와요

사서 쌤도 좋고 그냥 도서관 느낌을 좋아해서

사서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사서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너무 좋으시다

.

.

.



  후지이 이츠키가 느낀 감정이 이런 감정이었을까. 뒤늦게 깨달은 나를 향한 마음. 고맙고, 고마웠다. 영화 속 도서카드가 그대로 로망과 감동을 실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느새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는 내가 학교도서관 사서로서 살아가는 이유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나는 후지이 이츠키(女)가 되었다.


  아, 후지이 이츠키(女)도 도서관 사서이다.


도서카드에 적힌 내가 도서관을 찾는 이유



* 또 다른 이유

-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다양한 책을 품고 있는 서재를 보는 데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 도서관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책 냄새와 은은한 디퓨저 향기가 날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 친구들과 도서관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

- 우리는 책과 사람을 즐기고 겪기 위해 도서관에 온다.

- 유용한 책을 읽어 그 전공으로 꿈을 이루고 싶어요.

- 도서관에서 하는 수많은 이벤트에 참여하려고요.

- 도서관에 오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서관을 방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기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자주 와요.

- 아이돌 앨범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쉴 공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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