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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Jul 29. 2021

음악이 흐르는 도서관

북 카페 주간

  학교도서관을 활용한 문화예술 기반 창의·인성(감성) 교육 강화를 목적으로 학교도서관 내 청소년 문화 카페 설치 공모 신청을 받습니다.     


  5년 전에 받은 공문이다. 당시 도서관 리모델링 계획이 있던 터라 이 공모를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학교 측에서 말이다. 리모델링하는 김에 문화 카페 공간을 마련하여 학생들 정서 안정 및 문화 감성을 충족시켜주자. 이 기대효과를 얻기 위해 그때 학교도서관 사서로서 가장 바쁘고 힘든 1년을 보냈다.     


  학교도서관 리모델링과 문화 카페 설치를 위한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위원회를 구성했다. 지역 내 학교도서관 문화 카페 설치 사례가 없었고, 공모 사업비는 받았고, 우리는 답답했다. 함께 타 학교도서관 답사하고, 각자 북 카페와 서점을 돌아다니며 조사했다. 조사한 자료들이 쌓이니 참신한 생각들이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2016년 여름방학 학교도서관은 북 카페를 겸한 학교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학교도서관에 바 테이블과 바 의자, 스포트 및 펜던트 조명, 음악 CD 239매, CD 재생기, 헤드셋이 들어왔다.

     

  학생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학생들은 학교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앨범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아이돌 앨범에 딸려 온 아이돌 사진은 도서관 행사 참여 유도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2018년 가을 학교도서관 문화 카페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북 카페 주간을 운영했다. 일주일 동안 문화 카페 이용 학생을 대상으로 음료와 다과를 제공했고,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 감상과 미니 북 콘서트를 진행했다.   


  북 콘서트는 처음 계획에 없었다. ‘내가 읽은 책 속 내용과 어울리는 음악 찾기’ 활동을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자율 동아리 오케스트라 담당 음악 선생님이 가을 음악회를 구상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도서관 앞에서 연주하고 싶은데 시끄러워도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그럼 북 콘서트 방향으로 같이 해도 괜찮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선생님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더구나 도서관 안에서도 연주하자고 하였다.

   

  작가, 작가가 쓴 책, 독자, 질의응답, 음악이 어우러진 북 콘서트는 아니었다. 준비된 가을 음악회에 숟가락 얹는 느낌으로 이미 선정한 연주곡에 맞는 책을 찾아야 했다. 자율동아리 학생들이 몇 주 동안 연습한 곡 목록을 도서관에 맞춰 변경하기는 무리였다. 연주 대표곡은 〈캐논 변주곡〉. 〈캐논 변주곡〉이 나오는 책은 어떤 책이 있을까. 이왕이면 소설이면 좋겠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영화 〈미 비포 유〉 결혼식 장면에서 〈캐논 변주곡〉이 나온다고 한다. 바로 책 《미 비포 유》를 찾았다. 책 어느 쪽에 〈캐논 변주곡〉이 나올까. 책에는 안 나올 수도 있잖아. 535쪽에 달하는 책을 읽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일단 훑자. 훑어라도 보자.       

  책장을 빠르게 넘기다가 시선이 233쪽에서 멈췄다.

책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비포 (살림, 2013), 233.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들어왔고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나도 모르게 흥분에 가슴이 설렜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들이 조율을 시작하자 공연장이 단 하나의 소리로 가득 찼다.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생생한, 3차원적인 소리였다. 솜털이 바짝 서고 숨이 턱 밑에 찼다.

  지휘자가 앞으로 나와 단상을 두 번 톡톡 두드리자 거대한 침묵이 내리깔렸다. 그 정적이 느껴졌다. 한껏 기대에 차 있는 객석이 느껴졌다. 그때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자 갑자기 만물이 순전한 소리가 되었다. 음악이 실체가 있는 사물처럼 느껴졌다. 음악은 내 귀에만 머물지 않았고, 온몸을 타고 나를 에워싸고 흐르며 온 감각이 공명하게 했다.

  그래, 꼭 〈캐논 변주곡〉일 필요는 없다. 자율 동아리 오케스트라 연주와 잘 어울리는 부분이었다. 《미 비포 유》를 가을 음악회 책으로 선정했고, 이 발췌문을 넣어 홍보지를 만들었다.


  한 가지 업무가 끝나면 뭉친 몸 풀 겸 도서관 서가를 한 바퀴 도는 습관이 있다. 서가를 돌면서 분류기호순으로 배가되어 있지 않은 오배열 도서가 보이면 정배열한다. 몇몇 책들을 제자리 찾아 넣다가 박웅현 작가 책 《여덟 단어》에 손이 갔다. 그리고 다음을 발견했다.                     


  박웅현, 여덟 단어(북하우스, 2013), 95~96.

클래식 음악이 주는 기적

  어느 날 비 오는 날이었는데 차가 막혀서 한 시간 넘게 차 안에 있어야 했고, 광고주 부장급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이미 늦은 상태였어요. 패닉이었죠. 100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는 움직이지 않는 상황. 말 그대로 미치겠더라고요. 그런데 CD에서 가야금 캐논이 흘러나왔어요. 흐르는 선율에 맞춰서 빗방울이 보닛 위로 떨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한 곡이 끝나면 다시 성질이 나다가 다음 곡이 나오면 또 잠잠해지고. 제가 들어본 가야금 연주 중 최고를 발견했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캐논을 들어보자 하고 각각 다른 버전으로 들려줬어요. 집에 총 네 장의 캐논 앨범이 있었는데, 그중 가야금 캐논을 듣자 애가 갑자기 말이 없어져요. 그리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탁 하고 물을 잠그더군요. 가족이 모여 앉아 5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음악을 들었어요. 보배로운 순간을 또 한 번 경험했죠.


  캐논이다. 서가에서 캐논이 흘러나왔다.

      

  가을 음악회 미니 북 콘서트는 〈캐논 변주곡〉이 흐르는 도서관에서 진행됐다.

  도서관은 캐논을 감상하는 학생들과 이를 배경음악 삼아 책 읽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 순간 학생들 정서 안정과 문화 감성 충족 효과를 기대해도 됐을까. 학생들도 보배로운 순간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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