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재 Oct 26. 2021

아찔하고 초조하고

독서퀴즈대회

  1번 정답은 사과입니다.

  “오~ 1번 정답 사과래.”

  “화면(스크린)에 정답 보여요!”

  아뿔싸! 빔프로젝터 스크린이 켜져 있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스크린이 켜진 줄도 모르고, 독서퀴즈대회 퀴즈와 정답이 입력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겼다. 참여 학생 70명이 모인 자리에서 1번 퀴즈 정답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아찔했다.


  학교도서관 사서가 된 첫해 여러 행사를 계획하고 운영했지만, 독서퀴즈대회는 규모가 꽤 커서 부담되는 행사였다. 일과 시간인 5~6교시에 진행하고 대회 현장을 방송반 학생들이 각 교실에 실시간 방송한다. 교실에서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이 방송을 보며 응원한다. 방송계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흡사 두 시간짜리 생방송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히 필요했다. 준비가 지나쳤을까. 큰 행사라 긴장했을까. 독서퀴즈대회 시작 전에 출제한 퀴즈를 한 번 더 확인하려다 방송 사고를 낸 꼴이었다. 명백한 생방송 사고다.

  참여 학생들은 다행히 웃으며 아니 오히려 반기며 이 상황을 받아들였고, 모두가 1번 퀴즈 점수를 얻고 대회는 시작했다. 등엔 식은땀이 흐른 채로.

  

  퀴즈는 ㅂ선생님과 함께 출제했다. 시험 문제 출제 경험이 많은 ㅂ선생님 퀴즈는 순조롭게 넘어갔지만 내가 낸 퀴즈가 화면에 나올 때면 질문이 늘어났다. 객관식 중에 유사 정답이 있거나 주관식 중에 단답형으로 쓰기 불분명한 퀴즈들이 있었다. 준비할 땐 몰랐던 부분들이 현장에서 자꾸만 튀어나왔다. 등에 식은땀은 대회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흘렀다.

      

  다음 해 같은 문제점을 겪지 않겠다고 준비 또 준비했다. 동점자 퀴즈, 패자부활전 퀴즈, 간식 퀴즈 등등 경우의 수를 준비하고, 출제한 퀴즈도 반복 확인 뒤 독서퀴즈대회 진행 장소에 갔다. 대회 30분 전 미리 가서 갖춰야 할 일들이 있다. 독서퀴즈대회용 소형 칠판을 포함한 물품, 상품, 간식, 점수 집계표, 학급별 자리 배치표들이다.

     

  사전 준비 시간까지 계산해서 해당 장소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이미 다른 활동으로 학생들이 꽉 차 있었다. 해당 장소 이용 일정표가 어째서 어긋났을까. 5교시에 대회를 시작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상황 설명을 듣고 조금 일찍 장소를 비워 주긴 했지만 준비할 시간은 10분 남짓. 도서반 학생들과 빠짐없이 역할 분담을 하고 후다닥 움직였다.

  예상치 못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품 중 하나가 대회 시작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대회 중간중간 휴대전화만 봤다. 그날따라 퀴즈 진행 속도는 왜 그렇게 빠른지 남은 퀴즈 수가 적어질수록 초조했다. 이번 대회도 시작 전부터 끝까지 나를 불안하게 하는구나. 퀴즈는 어느덧 끝났고, 점수 집계 시간이 다가왔다. 상품은 점수 집계 때 겨우 도착하긴 했다.


  다음 해에는 이 방식으로 진행하고 또 다음 해에는 저 방식으로 진행하고 여러 차례 겪어 보니 어느 해부터는 독서퀴즈대회를 무난하게 진행했다. 시행착오가 많은 큰 행사인지라 아찔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바쁘고, 정신없고, 힘든 온갖 수식어는 다 붙이고 싶은 독서퀴즈대회지만 이 가운데도 힘 나는 순간은 있다. 답안 작성용 칠판에 “사서 쌤 사랑해용♡”라고 적어서 보여주는 학생. 날 응원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헤쳐 나아간다.

힘 나는 순간 "사서 쌤 사랑해용♡"
이전 06화 '시'가 무르익는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