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못 알아줄 때
휴학을 결정한 것도 로기 탓이 컸다. 따지자면 친구를 질투하는 내 좁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가 맞을 것이다. 다행인 건지 덕분에 공황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려웠어도 대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공황이 터지는 상황은 상상도 싫었다.
밖을 나가기만 해도 뒷목이 싸해지고 심장이 철렁거렸다. 마치 3년 동안 하루에 잠을 세 시간만 자며 공부해온 전국 1등이 대망의 수능 날 늦잠을 자 눈을 떠 시계를 확인했을 때 느끼는 그 식겁함을 잠투정이 취미인 내가 난데없이 체감했다. 진짜 전국 1등이었으면 덜 억울했을까나.
어느 컨디션이 괜찮은 날, 엄마와 집 앞 파스타집을 갔을 때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에 엄마가 무심코 뱉은 '여기 조금 덥다'라는 말 한 마디에 공황이 찾아오기도 했다. 덥다는 말에 뜨거운 공기가 극대화되어 느껴졌고 숨이 턱 막히며 뒷목이 차가워졌다. 난데없이 달려오는 트럭에 두려움을 떨며 결국 파스타를 포장해 집에서 먹었다.
집에 있어도 두근거림과 답답함은 계속 되었다. 방이 점점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외부로 통하는 틈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아 베란다 문을 계속 열어두었다. 에어컨 냉기가 빠지는 건 상관 없었다. 숨을 쉬는 게 먼저였다. 그럼에도 가슴을 옥죄는 갑갑한 갑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많은 신체화 증상을 겪으며 하루 하루 살아내기 힘들었다. 정신과 육체가 이렇게나 연결되어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마치 정신이 '엉아 쟤가 나 여기 아프게 했어'라고 일르면 육체가 나를 호되게 혼내주는 것 같았다. 정신을 돌보지 않은 죄를 물으며 온몸으로 성질을 내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울분과 눈물이 가득해 몹시 슬펐다. 그리고 아주 미안했다.
좋은 호르몬을 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하고 밖을 나가야 했지만 힘이 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일으킬 수가 없었다. 내가 먹은 파스타며 밥이며 물이며 사실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 대신 점성 있는 무언가가 흐르는 듯 했다. 꿀렁이며 검정 빛을 띈 석유 냄새가 나는 끈적이가 몸을 채웠다. 그러니 당연히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몇 번의 진료를 갔을 때 선생님은 내 증상을 천천히 듣더니 말씀하셨다.
우울증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