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상아 Feb 15. 2024

4. 작은 소갈딱지는 죽지 않는다.

기질과 유전이 미치는 영향

초진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부모님에 대해 물었다. 부모님의 성격과 병력을 묻는 이유는 우울과 불안을 담당하는 뇌 기관이 유전적으로 큰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순히 감정, 심리,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들만 떠올렸으니 유전은 조금 생뚱 맞게 느껴졌다. 진료를 받으며 차차 깨닫게 된 것은 결국 뇌도 유전된다는 것이었다.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얼굴과 체질 같은 건 닮는다는 걸 알면서도 두개골 안 뇌라는 기관은 유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했던 걸까.


희 아빠는 감정기복이 있으시고.. 엄마는 젊었을 때 우울증 비슷하게 있으셨다고 하셨어요. 원장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기질적인 부분에서 우울과 불안을 담당하는 뇌 기관이 취약할 수 있어 공황장애가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기질적이라는 말에 나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나는 매우 소심한 아이였다. 식당에서 사이다를 시킬 때면 언니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럼 언니가 우렁찬 목소리로 사이다를 시켜줬고 나는 얌전히 있었다. 식당 이모님이 들을 만큼 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사이다를 먹고 싶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게 부끄러웠다. 그러니 속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도 몇 년이 지나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그럼 엄마는 매번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조금 더 크니 친구들과 어딜 가든 주문은 내 몫일 만큼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내 안의 작은 소갈딱지를 가진 아이가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15년이 지났어도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 힘을 숨긴 아이였다.


그렇게 50분 정도 되는 초진을 마쳤다. 그 안에 약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들었고 이젠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믿음이 생겼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괜찮은 병원이라고 말했다. 그 날 엄마는 병원 리뷰를 썼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곁에서 애만 태우고 있었는데 치료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온 아이를 보니 이제 좀 안심을 합니다. 원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전 03화 3. 난생처음 정신과에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