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듯 도망치고 안아주듯 반긴 곳
나도 알고 있었다. 이건 신이 아닌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빌어야할 문제였다. 하지만 정신과를 가겠다는 말을 꺼내면 엄마의 억장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딸이 정신과에 간다니. 내가 정신과에 가는 건 상관없었지만 엄마의 딸이 정신과에 가는 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의외로 먼저 말을 꺼낸 건 엄마였다.
다음 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했다. 들어가자마자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이 불문 성별 불문. 정말 많은 사람들이 소파에 앉거나 서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기피한다는 정신과 맞나, 생각하며 접수를 했다.
공황장애네요.. 약 3일치 처방해드릴테니 밥 먹고 드세요.
공황장애? 연예인들이 걸린다는 그 병? 예상치 못한 병명에 다시 뒷목이 뻣뻣해졌다. 내가 아는 한 나는 공황장애에 걸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나는 연예인처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도, 과도한 스케줄을 소화하지도 않는다. 아니, 않나? 그때 어렴풋이 한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신기하게 약을 약국이 아니라 병원에서 지어줬다. 처음 받아보는 정신과 약을 들고 병원에 나와 봉지를 다시 한번 보았다. 왠지 모르게 약 이름들이 괴팍하게 느껴졌다. 외국어 욕 같기도 한 생소한 약들에 괜히 더 반감이 들었다. 이름만 듣던 정신과 약물. 손에 잡히지 않는 정신을 치료한다니. 믿기지 않는 논리였다. 내가 불안한 생각을 하면 어쩔건데? 이 약 하나로 생각을 바꾼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먹지 않았다. 이게 내 몸에 어디로 흘러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먹을 순 없었다. 감기약은 꿀떡 잘 먹으면서 부리는 고집이었다.
... 그럼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오세요.
지난 3일간 약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증상이 심해지면.. 나는 지금 매일 트럭에 치이기 직전을 사는데 그럼 트럭에 치이고 나서 오라는 건가, 그럼 죽음 뿐인데. 집에서 찾아본 공황장애 증세에 매우 공감됐지만 공황장애가 왜 일어나는지, 구체적인 치료법은 무엇인지, 이 약들은 어떤 작용으로 날 낫게 하는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과를 나왔다.
정말 내가 불안함에 몸서리치다,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져, 잘못 되어, 귀신으로 나타나, 병원으로 가 '이제 약.. 잘 먹을게요..'라고 해도 눈 하나 꼼짝 안할 양반이었다는 걸 엄마에게 말하자 다른 병원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엄마는 얼마 뒤 친구 아들이 공황장애에 효과를 봤다는 병원을 알아내 예약했다. 그렇게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지금의 원장님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