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상아 Feb 13. 2024

2. 잿물로 몸을 씻다.

'부처님,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세요. 석가모니불..'

엄마는 잿물을 만들었다. 김장통에 물을 붓고 그 위에 향을 부숴넣었다. 그리고 이 물로 온 몸을 구석구석 닦으라고 말했다. 스님이 알려준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잿물로 몸을 씻었다. 은근 기분이 상쾌했다. 씻고 나와 바닥에 앉아 엄마와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부처님,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세요. 석가모니불.. 엄마는 이렇게 빌었다고 한다. 부처님, 딸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제 몸에 오게 해주세요. 석가모니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막막했다.


나름의 노력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팔딱거리는 심장과 이름 모를 불안에 그저 모든 감각을 잊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매순간 덤프트럭에 치이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덤프 트럭을 보고 도망갈 새도 없이 두려움에 떠는 그 찰나를 길게 잡아 늘려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이불 위에 누워 수 만번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제껏 경험했던 불안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시험을 망칠까봐, 발표하다 실수할까봐, 취업을 못할까봐, 가족이 죽을까봐, 지구가 멸망할까봐. 이유를 아는 불안은 해결할 수 있었다. 터무니 없는 이유더라도 기분을 환기하면서 나를 달래면 보통 사라졌다. 그런데 인과관계에서 원인이 쏙 빠지고 어떠한 결과로 불안만 남은 경우에 도통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시작되는 지점이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으니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맞닥뜨린 재앙에 아무것도 못하기를 며칠 째, 엄마가 말했다.


상아야, 정신과 가볼래?





이전 01화 1. 느닷없이 찾아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