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연극으로 나를 만나다
"연극 좋아하신다고 해서 생각났어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이 내게 추천했다. 오, 사람들과 만나서 연극 만드는 프로그램이구나. 뮤지컬 넘버 연기처럼 재밌겠다 싶었다. 내가 설명문을 또 제대로 읽지 않았나 보다. 연극 만들기가 이니고, [연극을 통한 치유 프로그램] 이었다.
개인적으로 연극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다. 연극치료사가 되는 과정과 자격증도 궁금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기회였다. 이번엔 내가 내담자보다는 관찰자의 눈으로 연극치료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 자기소개, 눈 맞춤활동
자기소개 :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밝히고 싶은 만큼만, 드러내고 싶은 만큼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강사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 : 공책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내가 꿈꾸는 내 모습을 한 문장으로 공책에 적어보라고 했다. 마침 그날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 “나, 자유롭게 춤추며 살고 싶다.” 그렇게 적었다.
눈 맞춤 시간 : 마룻바닥 공간의 무대를 세팅했다. 한쪽으로 사람들을 앉혀서 모두 한 방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강사가 먼저 무대에 앉아 시범을 보였다. 말없이 앉아있는 15명의 참가자들의 눈을 한 명당 10초 정도 마주쳤다. 그리고 한 명씩 무대로 불렀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의 마음을 내려놓고, 힘들면 멈춰도 된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런 치유프로그램들을 보면 눈을 맞추는 걸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뭔가를 응시하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중요하게 여긴다. 강사님이 정확히 한 명씩 따뜻하게 바라보는 데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는 관찰자, 그러니까 관객으로 있을 때엔 주인공의 눈 맞춤을 최대한 그대로 받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눈 맞춤이 끝나면 주인공의 자세, 표정, 얼굴 근육 같은 것도 관찰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던 바르게 자세를 고치려 애쓰는 모습, 민망해서 먼저 웃어버리는 모습들은 내 안에도 있는 나와 닮은 부분이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이제 겁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딴에는 나는 지금 여유가 있으니 나와 눈을 마주치는 상대방을 품어주고 싶다,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도 어찌 보면 오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불편할 수도 있잖아. 물론 그건 그 사람 몫이지만. 그래서 최대한 거울처럼 눈 마주치는 상대를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문득 ‘행운을 빌어요’란 대사가 생각나면 그 말을 마음속으로 했다.
[2] 용서한다 / 용서하지 않는다
문장 완성하기 : 나는 용서한다 혹은 용서하지 않는다로 시작하고 끝나는 5줄 정도의 자신의 문장을 만드는 활동이었다. ‘용서’라는 문장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어 털어놓는 시간이다. 강사님은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만큼, 관객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 갑자기 ‘용서’라는 단어가 확 무겁게 다가왔다. 내가 말해주고 싶은 오픈 선은 어디까지일까? 고민했다. 강사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툭 꺼냈는데, 예상보다 수위가 세고 깊어서 훅 들어왔다.
문장 발표하기 : 돌아가면서 자신이 적은 문장을 읽었다. 나는 일부러 이제 좀 털어내고 해결된 사연을 적었다. 그럼에도 문장을 읽자 살짝 감정이 요동쳤다.
독백극 : 각자 적은 문장들을 연극적으로 발전시켰다. 그 상황으로 들어가 상대나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그렇게 쓴 대본을 다시 돌아가며 발표했다.
참여한 사람들 모두 두 번의 발표 내내 진지했다. 말을 잇기 힘들어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게 가족, 친구,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용서’는 관계 속에서 받았던 상처와 이어진 것 같다. 나를 포함한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상처를 주고받으니까. 독백극 발표에서 사람들이 보여 준 숨소리, 목소리의 떨림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하지 못했던 말,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한 없이 떨리지만 말하고 있었다. 진심이 느껴질 때 울림이 커진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3] 몸풀기, 독백극을 넘어서
스트레칭 : 운동이라기보다는 연극을 위한 예열 같았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동작들을 함께 따라 했다. 발성호흡을 배워보았다.
연극놀이 : 종이컵 족구 같은 간단한 연극놀이를 했다. 그리고 걷기 놀이를 했다. 속도를 다르게 하며 무대를 인지하고 내 걸음에만 집중한 채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용서한다/용서하지 않는다’ 독백극 상황의 캐릭터가 된 모습을 걸음걸이에 실었다.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서 캐릭터 감정에 이입하면서 그 시간 속으로 여행 갈 준비를 했다.
독백극을 넘어서 : 일전에 다른 사람 앞에서 각자의 대본을 읽었다면, 이번엔 구체적인 상대를 세웠다. 주인공 반대편에 상대를 앉게 했다. 처음은 상대가 뒤를 돌고 있다. 상대의 뒤통수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다음에는 상대가 앞을 보고 주인공의 말에 개입하고 대꾸를 해주었다.
이 날 수업을 가기 전, 상대로 내 역할을 고민했다. 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를 내가 막 해결해 주겠다는, 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좀 내려놓고 싶었다. 잘하려는 욕심도. 그냥 처음 눈 맞춤처럼 그대로 받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하고 있는 말을 잘 듣고, 바라봐주고, 만약 대사가 올라오면 그때 해주자고 마음먹었다. 강사님도 내가 상대자였던 주인공분도 나에게 따뜻했다고 해줘서 뿌듯했다. 아마 함께 참여했던 모든 분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내면서 후련하고,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던 마음. 누군가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내고 싶고, 그것이 상대에게 전달되길 바랄 테니까.
혼자 일어서기 힘들었을 때 연극치료를 찾았다. 매주 받았던 해도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만난 해도 있었다. 단박에 변화가 오지는 않았다. 왜냐면 현실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조금 괜찮아질라치면 더 큰 파도가 몰려왔다. 그러나 덕분에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지우고 싶었던 사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 상처라고만 여겼던 일들을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내게 벌어진 일들을 어떻게 볼지는 결국은 내 선택에 달려있었다. 연극치료 선생님이 나를 바라봐 준 눈빛을 기억한다. 언젠가 내게 더 큰 파도가 혹 온다고 해도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생겼다. 있는 그대로 봐주는 눈 맞춤. 나도 내 주변도 그렇게 바라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