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시도들이 포함된 시간
휴직을 하고 들었던 걱정은 강제적인 루틴이 없는 것이었다. 풀어질까 봐, 기한 없이 늘어질까 봐 두려웠다. 일상을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나도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겠다며 매 해, 매 달마다 다짐했다. 그런데 일상을 잘 보낸다는 게 뭘까? 잘 먹고, 잘 자고, 몸을 움직이면 되나? 하나씩 들여다보겠다.
교사 생활안에서 바꾸고 싶은 소원을 물으면 ‘여유로운 점심식사’라고 답하고 싶다. 정말 점심을 마음 편안하게 먹고 싶었다. 저학년을 맡으면 아이들 요구르트 뚜껑 따주고 챙겨주기 바빴다. 교실급식을 하는 학교에서 근무하면 매번 배식과 뒷정리로 시간에 쫓겼다. 아이들이 먹는 동안 그날 접수된 갈등사건을 해결해야 할 때도 많았다. 복도로 불러서 얘기하고 중재하고 나면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고학년 아이들은 밥을 금방 먹는다. 아무리 내가 먼저 먹기 시작해도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까 밥도 반찬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마셨다. 당번 아이들은 급식차를 치우며 '선생님 천천히 드세요.'라고 말했다. 근데 내 마음대로 안 되었다. 아이들이 말은 그렇게 해도 얼른 치우고 놀고 싶어 하는 게 들썩이는 온몸에서 보였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급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올해는 식사를 잘 챙겨 먹는 걸 목표로 삼았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직장을 다니면 직접 해 먹기가 쉽지 않았다. 재료 손질하고 먹고 치우면 거의 3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러니 밖에서 먹기 일쑤였다. 쉬는 동안은 웬만하면 직접 해 먹으려고 노력했다. 레시피대로 따라 하고 반복하니 조금 능숙해졌다.
봄날에는 더더 건강하게 먹어야지라는 열망을 따라가다 ‘채소찜’에 빠졌다.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채소를 썰어 찌기만 하면 되니 간편했다. 소금, 후추, 들기름만으로 간을 해도 맛있었다. 왠지 속도 편해지고 피부도 좋아진 것 같았다. 오지랖이 발동해 만나는 지인에게 자랑하며 전도했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고 과신하던 무렵, 탈이 났다. 장염이었다. 이렇게 나름 잘 챙겨 먹는데 왜 아프지라며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장염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했다. 이후 좀 괜찮아지자 못 먹었던 날을 보상받으려는 심보인지 과식을 넘어 폭식을 했다. 고백하자면 내가 만든 음식이 꽤 맛있다. 스파게티를 3인분 만들어서 소분하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다 해치운 적도 있었다.
야식은 몸에 안 좋아/ 떡볶이 되도록 먹지 말고 참자/ 밀가루도 끊어야 좋다던데/ 이렇게 애써 참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더 큰 폭발음을 내며 터졌다. 그리고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폭식하는 나를 보았다. 이후로는 크게 터지기 전에 조금씩 바람을 빼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종종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작은 보상을 해주었다.
건강한 음식(견과류, 채소, 적절한 단백질, 야채, 요구르트, 현미밥 등)을 챙기려고 하지만 어려웠다. 오히려 너무 충동을 누르면 터져서 더 자극적인 msg를 찾았다. 그러니 너무 얽매이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요리실력이 좀 늘었다. 나를 위한 한 끼를 완성하고 나면 뿌듯해 사진도 많이 남겨두었다.
낯선 장소에 가면 잠을 잘 못 잔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내가 늘 마지막에 겨우 잠이 들었다.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을 빌리면 애착이불이 없이는 잠을 못 자고 계속 우는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예민하다. 내 침대에 누워도 잠이 안 오는 날이 많다. 그런 밤이면 ‘잠을 자야 하는데, 왜 안 오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명상도 해보고, 수면환경도 바꿔보고, asmr도 듣고, 약도 먹어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글쓰기 수업에는 마감기한이 있다. 마감까지 모니터를 노려보며 달렸다. 자정에 약속된 밴드나 메일로 올리고 난 후로 몇 시간 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더 잠이 들지 않았다. 어떤 때는 잠을 못 자는 나에게 더 반항하려는 듯 괜히 유튜브 릴스를 하염없이 보기도 했다.
쉬고 있는 지금은 강제적인 장치가 없다. 그래서 패턴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해.’ 이것도 나의 강박인 것 같았다. 이 생각으로 잠이 드는 시간에 더 민감해졌다. 그래서 요새는 ‘늦게 잠이 들면 조금 늦게 일어나면 되지.’로 마음을 먹었다. 잠에 대해 덜 신경 쓰려고 하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어렵다.
나는 사고로 척추에 심을 박았었다(지금은 제거했지만). 그 사이 전신마취 수술을 4번 했다. 수술 이후 재활부터 운동은 내 삶에서 큰 부분이었다. 몸은 전과 달랐다. 유연하지도 자세가 곧지도 않았다. 운동하면서 제대로 자세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속으로 화가 났다. ‘왜 나만 이 동작이 안 되지?’ 이런 열등감과 질투에 휩싸였다.
언젠가 명상 수업에서 “하다 보면 호흡도 깊어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니까 의식하지 않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된다는 말이 뭔가 딱딱했던 내 몸을 순간 녹여주었다고 해야 할까? 그 말이 오랫동안 남았다. 애쓰는 것도 물론 가치가 있고 중요하지만, 그냥 하다 보면 언젠가 된다는 믿음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휴직을 하고 나니 시간은 여유로웠지만 금전은 그렇지 않았다. 개인 PT에서 그룹운동을 받기로 했다. 그룹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 헬스장에 가서 무게를 작게 하고 연습했다. 자발적으로 운동을 간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녀오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하고 왔다’에 의의를 두었다. 신기하게도 하다 보니 자세도 좋아지고 무게도 늘었다. 할 수 없다고 느낀 동작도 해내는 나를 보았다. 그렇게 조금씩 재미를 붙이며 오히려 안 가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왜 운동에 중독이 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세에 대해서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틀려도 큰 사고 나지 않을 거라고 나를 더 믿어주기로 했다.
수술과 재활의 시간을 거친 이후 나에게 ‘건강’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점점 지나쳐서 마치 선/악을 가르듯, ‘건강’은 무적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술, 담배는 무조건 안 돼 / 밤늦게 먹지 마/ 일찍 자야 해/ 무리해서 운동하면 큰일 나' 이렇게 잣대가 점차 뚜렷해졌다. 물론 여전히 건강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뭔가를 강하게 나누고 가두는 것에 재고해 보았다. 과거에 선/악, 흑/백으로 나누었던 뚜렷한 기준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옅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도대체 일상을 잘 보낸다는 게 뭘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는 것. '잘'이라는 부사도 어느 수준인 건지 어떤 기준인지 참 어렵다.
휴직을 하면 평온한 일상을 보낼 것 같았다. 돌아보면 올해도 내 나름의 부침이 있었다. 쉬어도, 놀아도, 마음의 갈등은 파도처럼 늘 찾아왔다.
때로는 '건강'도 뭐고 다 때려치우고 더 반항하려는 듯 엇나가기도 했다. 아무것도 '잘'하고 싶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더 보고 불량식품만 찾고 싶었다. 글 쓰는 게 좋다고 떠벌렸지만, 글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했다. 마감이 다가올 때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시험기간에 공부가 하기 싫어서 괜히 평소에 안 보던 ebs교양프로그램, 다큐멘터리에 사로잡히고 눈길이 갔던 학생 때가 생각났다. 그러다 어김없이 시간이 흘렀고 다시 글에 몰입했다. 그러고 나면 '나, 의지가 약하네.' 라며 헛웃음이 나왔다.
20대의 나는 매년 다이어리를 사면 앞장에 '나만의 원칙'을 적었다.
'피부를 깨끗이 한다 /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 / 책을 몇 권 읽는다' 같은 지키고 싶은 목록이었다. 나를 가두는 규칙이 많아지면 그 틀을 부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나를 여전히 마주한다.
일상을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 안에도 강박이 있었다. 그대로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빨리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며 조급했다. 불안했고 조급했고 나약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인 나다. 아무것도 안 했던 무용(無用) 한 시간도, 쓸모없다 여겨지는 시간도 필요했다. 스스로 준 ‘자유 시간’ 동안 되도록 잘 먹고, 잘 자고, 움직이려고 했다. 뿌듯해서 스스로에게 취한 적도 있었고 잘 안 되는 날도 많았다.
그 모든 시도들이 포함된 시간들이 비로소 ‘잘’ 보냈던 내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