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쾰른의 호텔에서 엠마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엠마는 며칠 더 머물다 가라고 했다. 나는 연말이라 회사 업무가 밀려있다고 했다. 에스더의 사고 관련 기사가 실렸다며 지역신문을 건네줬다. 쾰른시 이스탄불 거리의 터키 식당에서 발생한 폭발과 총격 사건은 극우파에 속하는 민족 사회주의자 지하당(NSUP)의 소행이라고 했다.
“여기서 태어나 사십여 년을 살았는데 난 여전히 이방인이야.”
에스더도 엠마처럼 평생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물 위에 떠 있으면서 물에 스미지 못하는 소금쟁이처럼 나 또한 에스더에게 스며들지 못했다. 나는 혈통을 중시하는 집안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가 재촉하는 결혼을 거부하는 것으로나마 내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엠마의 아버지는 이민 1세대였다. 엠마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독일 학교에 다녔다. 엠마 스스로는 독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고 했다. 독일로 건너온 에스더와 함께 이민자 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누르며 조금 흐느꼈다.
식사를 마치자 엠마가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이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처럼 무거워 보였다. 청둥오리 여섯 마리가 짝을 지어 검은 숲 너머로 사라졌다. 새들은 튼튼한 날개와 오래된 유전자의 기억으로 날아오른다. 나는 에스더의 날개가 튼튼한 줄 알았다. 독일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뤘기에 으레 잘 지내는 줄 알았다. 그게 모두 착각이었음을 장례식에 와서야 깨달았다. 에스더는 도요새처럼 체중을 불리고 지방을 축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공항에 도착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엠마가 서류 봉투를 건넸다. 에스더의 유품이라고 했다. 인천행 비행기가 어둠 속에서 날아올랐다. 좌석 바로 옆 창문 너머로 별 하나가 반짝거렸다. 공연히 그 별에 눈길이 머물렀다. 별이 보이지 않자 엠마가 준 봉투를 꺼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에스더에게 건넸던 쪽지와 편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편지의 여백에 한글로 끼적거린 에스더의 글씨가 흐릿했다.
아빠를 찾을 수 없다,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팔까, 동현이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에스더에게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영혼을 팔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 그녀가 나를 두고 독일로 떠났을 때보다 더 길고 무거운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