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정 Jan 06. 2022

테크노파크 출근기

인수인계

  전임 사서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러 도서관으로 갔다. 다리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외관상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타인의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정확히 알 수 없기에 퇴사 사유에 관한 판단은 멈추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임 사서는 입사 하루 만에 퇴사를 결심했고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 일주일 정도 근무를 한 상태였다.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몇 명의 사서가 거쳐 간 것 같은데 정확히 몇 명인지는 헤아릴 수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기관은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착잡한 마음이 앞섰다. 전임 사서 역시 짧은 기간 동안 잠시 머물러 있었던 것뿐이라 업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임 사서 이전에 계셨던 분이 작성한 인수인계서를 읽어본 뒤 당장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들었다. 사람이 계속 바뀌면서 업무가 많이 밀려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작은도서관은 1인 사서 체제이기 때문에 단시간 근로자가 출근해야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장 내일 출근해서 혼자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하기에 출입문 비밀번호와 보안 관리에 대해 듣고 집으로 왔다. 갑작스럽게 며칠 안에 너무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 탓에 정신이 없었지만 당장 내일 아침 도서관 문은 열어야 할 것 같아 메모해 두었던 출입구 관리 방법과 비밀번호를 숙지해두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도서관을 정시에 개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도서관까지 5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버스가 테크노파크 단지로 진입하자 정류장 하차 승객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천 테크노파크는 대규모 아파트형 공장 산업단지로 1단지부터 4단지까지 총 4개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부천 외곽에 위치하는 테크노파크로 매일 출근하는 근로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버스 환승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자칫하면 출근길에 지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다른 대안을 생각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걱정과는 다르게 메모해 두었던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누르고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이 공간 안에 책과 나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컴퓨터를 켜고 도서관리시스템을 켰다. 코라스라는 공공도서관 도서관리 시스템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회원가입부터 대출, 반납, 상호대차 등 사용 방법을 한 번 읽어보았지만 이용자 응대를 무리 없이 할 수 있는지 걱정이 되어 무척 긴장된 상태였다. 

  9시가 되자 이용자가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와 다짜고짜 핸드폰을 내밀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상호대차요!”라며 살짝 짜증을 냈다. 그때 상호대차 도서를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핸드폰 화면에 저장되어있던 모바일 카드로 바코드를 찍고 상호대차 도서를 조회했다. 여러 권의 책에서 이용자가 신청한 책을 찾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급하니까 빨리빨리 좀 해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단지 몇 초 동안 책을 스캔했을 뿐인데 상대방이 화를 내어 얼떨떨했지만 책을 얼른 찾아내어 주었다. 무언가 급한 사정이 있었겠다고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저런 이용자를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정신이 없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 생각했다. 다행히 이용자가 많이 오지 않아 이것저것 서류를 찾아보면서 급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단시간 근로자가 출근했다. 근무를 교대로 하다 보니 점심 식사를 같이할 사람이 없었다. 코로나로 복지관 구내식당 운영이 중단되어 외부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어야 했다. 혼밥은 익숙한데 동네가 익숙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규모가 꽤 있는 김밥집이 눈에 띄었다. 혼자 먹기 적절한 메뉴였다. 기본 김밥을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빼고 모두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새삼 내가 하게 된 일이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주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직장 동료 또는 거래처 담당자나 고객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으며 김밥을 씹어 먹으니 외롭지 않았다. 김밥 한 줄을 섭취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점심시간 1시간 중에서 30분이나 넘게 남아 인근을 산책하기로 했다. 3월이라 날씨가 쌀쌀하기는 했지만 정오에 내리쬐는 햇볕에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5분 정도 걸으니 부천체육관이 보였다. 코로나로 체육관 운영은 중단되었지만 주위를 뛰거나 걷는 시민들이 꽤 있었다. 밝은 햇살을 받으니 혼자라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오늘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통계자료를 작성하고 그밖에 밀려있던 각종 여러 업무를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고 퇴근했다. 

  새로운 공간과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는 오랜만이었다. 테크노파크 단지에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직장의 ‘위치’밖에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테크노파크라는 공간에서 내년 1월까지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찾아보기로 했다. 

이전 01화 테크노파크 입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