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나는 누구일까요?>
아이들이 5살, 9살 때였다. 여행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누구일까요?”를 시작했다.
둘째: 나는 누구일까요?
첫째: 살아있나요?
둘째: 네!
엄마: 어디에서 사나요?
둘째: 제주도에 살아요.
엄마: 동물인가요? 식물인가요?
둘째: 동물이에요.
첫째: 무슨 색깔인가요?
둘째: 하얀색 그리고.......... 검은색!
엄마: 얼룩말!!
둘째: 땡! 정답은.......................... 양!!!!
엄마: 양.......??
둘째가 4살 되던 해, 제주도 여행 중에 ‘드라쿰다’라는 목장 카페에 갔었다. 그때 카페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양에게 먹이를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알고 배웠던 책 속의 양은 항상 하얀색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말에 다시 양의 색깔을 떠올렸다. 마당 여기저기를 누비며 더러워진 양의 털은 검으티티한 누런색에 가까웠다. 동화책 속에서 보았던 양이 아니라 아이가 먹이를 주며 직접 눈으로 보았던 양의 색깔은 하얀색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와 여행하며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직접 보고 경험하는 세상은 책 속의 세계와는 다르다. 만약 둘째가 양을 직접 보고 먹이를 주며 관찰하는 경험을 하지 못 했다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양의 색깔은 계속 흰색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양을 직접 본 후에 지식으로 양을 흰색이라고 배운다 하더라도 그 아이는 교육의 범위 안에서 동물의 색깔을 나눌 때 흰색의 범주에 놓는다라는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 없이 양의 색깔을 배운 아이는 나중에 그 틀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은 향후 창의력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다.
요즘은 창의력 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창의력 교육이 네모난 공간에서 변화하지 않는 환경과 재료들로 교육한다면 그 교육은 사람이 계획하지 못한 무수한 변화를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창의력은 창의력 교육이라는 계획된 또 다른 이름의 가르침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의 변화와 사물의 다름을 직접 경험하고 그 다름을 조화롭게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더 넓고 더 깊이 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을 때 갖출 수 있는 능력이다.
창의력은 바람이 공기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과 나를 향해 불어오는 사계절의 바람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아이만이 키울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