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추워서 행복한 이글루 만들기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옥상으로 달려 나갔다. 첫째는 눈사람을 만들고 둘째는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더니 물 통 안으로 눈 넣기를 무한 반복하며 놀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에 시작한 눈놀이라 한 시간 정도 놀고 집으로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퇴근을 하고 온 아빠와 아들은 갑자기 이글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유튜브를 검색하며 이글루 만드는 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늦은 밤 아빠는 왜 아들에게 이글루에 대한 부푼 기대와 꿈을 심어주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불안했고 그 불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돌아왔다.
아빠는 출근을 하고 이른 아침부터 아들은 아니나 다를까 이글루 타령이다. 해가 뜨고 얼마 되지 않은 최저 기온 영하 19도의 날씨, 아무리 아이들 노는 것에 관대한 엄마라도 이런 날씨에 아이를 내보내는 건 쉽지 않았다. 아이에겐 해가 머리 위로 뜨면 시작하자고 이야기하고 집안일을 살폈다.
점심이 지나고 나가기로 약속은 했지만 아들은 매시간, 매분, 매 초마다 나갈 수 있냐고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냐고 물었다. 점심을 일찍 먹으면 점심이 지나는 거 아니냐고 한다.
약속대로 점심을 먹고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오고 아들은 이글루를 만들겠다며 장난감 통을 비워 옥상으로 갔다. 뒷정리를 하느라 바로 따라가진 못했는데 아빠와 본 동영상의 효과인지 혼자서 기초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세로로 놓여있던 눈덩이는 가로로 다시 옮기고 눈벽돌이 부서지지 않도록 물을 뿌려주었다. 눈놀이를 하겠다고 나온 동생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빠의 이글루 만들기를 돕는다. 한 층, 두 층.. 한 시간 넘게 이글루를 쌓아가던 아이들은 너무 힘들다며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 안에 숨는다.
이불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는 아이들을 대신해 나는 이글루를 쌓아나갔다. 30분 정도 몸을 녹인 아이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 높아진 이글루에 신이 났다. 아이들도 다시 힘을 내 눈벽돌을 만들어 쌓기 시작했다.
이글루를 만들기 시작한 지 4시간 정도 되니 해는 저물어 갔고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옥상의 눈은 다 사라졌다.
아싸!
이글루를 완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아들에게 할 말이 생겼다. 더 만들고 싶어도 눈이 없었다.
이글루가 아닌 반글루로 집 짓기는 끝이 났다. 아들은 몇 번이나 다음을 기약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는 오늘의 출근이 자신의 행복이었던 거냐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며칠 후, 아들은 못 다 만든 이글루를 천사점토로 완성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녹지 않은 반글루를 보고 와서는 자기는 다시 눈이 내리면 꼭 반을 더 완성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자 했고 다음 눈은 꼭 토요일에 내려주길 바랬다. 아들과 이글루 만들기를 통해 쌓아야 하는 그 소중한 추억을 나는 꼭 아빠에게 양보하고 싶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