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만 모여 지내는 남자 중학교에 가게 된 초등 티 나는 아이!
나는 국어를 참 좋아했다.
윤동주의 서시
유치환의 바위
이육사의 청포도
도종환의 담쟁이
김춘수의 꽃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위에 열거한 시가 그 당시 교과서에 실린 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 기억되는 시를 적어 봄.)
그때 당시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들은 모두 다 암기했던 것 같다.
국어책에는 수필도 있고 소설도 있었지만 유독 시를 좋아하지 않았었나 싶다.
꿈 많은 문학소년!
책 속과 현실을 동일시했던 소년
국어 수업 시간만 되면 선생님이 한번 읽어 보라고 하기를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가,
내가 시의 주인공이 되고 시인이며 작가가 되었던 그 시간들,
그때(내가 80년도 초에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만 해도 대학교의 국문학과는 꽤 괜찮은 학과였다.
나는 운 좋게도 중3 때 국어교과 담당인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김태연 선생님
내가 국어를 더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선생님!
내가 국어를 좋아해서 선생님을 좋아했는지 선생님을 좋아해서 국어를 좋아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실업계고등학교(지금의 특성화고)로 진학하려고 했을 때 말리시며 대학 가서 국문학 전공하라 하셨던 선생님!
(나와 부모님은 가정형편상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려고 실업계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의 노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가능했는데 그때 난 왜 가난을 핑계 삼아 학업에서 도망을 갔을까?
선생님은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계시겠지.
아참 그 녀석도 보고 싶다.
유선형
나의 얼굴을 죽창으로 만들어 버린 나보다 번호 하나가 앞 번호인 숫자상으로는 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녀석, (아마 책상이 자기 쪽으로 너머 왔다느니 아주 사소한 일로 다투었던 것 같다.)
그날 지나가던 한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도 몸의 어디 하나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으로는 나도 그 녀석을 한 대는 때리긴 한 것 같다.
그날 한문 선생님은 나에게 "넌 싸움은 안되니 공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녀석 아버지가 태권도 관장으로 그 녀석은 태권도 유단자였다.
누군가와 함부로 싸우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려 준 그 녀석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의 미래를 걱정해 준 은사님
나에게 싸움을 가르쳐 준 친구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