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고등학교 3 학년이 중학교 3 학년을 좋아해도 되는 건가요?
나는 거의 모태 신앙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초등학생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아마 내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때는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 아인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고등학생이 될 무렵이었겠지.
정은이
우린 수련회 한다며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면 1박 2일로 모여 앉아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밤을 새우던 시절이었지,
그 아인 또래의 남학생들 사이에서 미팅을 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선배라는 미명하에 미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저 바라볼 수만 있는 처지였다.
그렇게 몇 번의 수련회를 지내고 어는 겨울 수련회 우리들은 돌아가며 한 명씩 노래를 불렀다.
그 아이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지만 나는 신형원의 개똥벌레(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를 불렀다.
어느 여름 수련회에서는 김원중의 바위섬(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을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은이를 견제하는 같은 학년의 경미는 나를 보며 신형원의 유리벽(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네)을 불렀지,
아마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나만의 착각일 수도!)
그날 수건 돌리기를 할 때인지 야식을 준비하다가인지는 몰라도 우연히 그 아이의 손이 내 입술을 스쳤다.
지금도 그 감촉이 남아 있다.
그렇게 3년을 정은이 곁을 돌며 지켜보다가 정은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무조건 그 아이 집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날따라 비가 왔지.
만나긴 했지. 좋아한다 얘기도 했지.
어떻게 이제 갓 고3 티를 벗은 아이에게 좋아한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 아이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절에서 보던 오빠가 난데없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자기를 좋아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오로지 나의 감정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때 비를 쫄딱 맞고 집으로 갔었지.
그 이후로도 나의 짝사랑은 한번 데이트도 못하고 길게 이어졌다.
그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
어쩌면 이것이 나의 진정한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그 아이 어머님이 나를 좋게 봐서 살아계셨으면 그 아이와 잘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아이와의 인연이 아니었는지 그 아이 어머님이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그 아인 다른 절로 다니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첫사랑의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아이와 동갑인 남자 후배를 통해 소식만 전해 들으며 그 아이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오랫동안 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