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왈!
"요즘 TV는 왜 이렇게 켜기가 어려운 거야?"
그 남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TV를 켤 줄 몰랐다.
어찌 보면 그래서 TV를 자주 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가 TV를 켜려고 할 때 곁눈질로 보면 전기가 연결된 콘센트의 전원을 ON으로 하고 셋톱박스에 불이 깜박깜박거릴 때 리모컨 두 개를 만지작만지작거리면서 TV를 켜는 것 같았다.
좀 알려달라고 해도 그 남자가 혼자 있을 때 TV만 볼까 봐 걱정을 하는지 좀처럼 가르쳐 주려 하질 않는다.
그래서 그 남자 어느 날인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에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TV를 켜는 것을 시도해 봤다.
그동안 곁눈질로 바라본 바로는 첫 번째 전기가 연결된 콘센트의 전원을 ON으로 하고 리모컨의 TV 전원 버튼을 누른 것 같아 그렇게 해봤는데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빈 모니터 화면에 '연결된 PC를 찾을 수 없다'라는 화면만 계속 나왔다가 일정시간이 지나니 그 화면조차 사라졌던 것 같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리모컨으로 껐다 켜기를 여러 번 반복해 봤는데도 TV는 켜지지가 않았다.
네이버에 검색도 해봤는데 그 남자 검색 능력도 키워드 도출 능력이 부족하여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고 이내 지쳐버려 TV 켜는 것을 포기했다.
며칠 후 처갓집에 가있던 아내가 돌아와서 저녁에 TV를 켤 때 이번엔 좀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전원 콘센트의 파워를 ON으로 하고 리모컨을 켜는 것은 똑같았다.
그런데 손으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듯하더니 화면이 나온다.
그다음은 리모컨을 손으로 가리고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보여주지 않는다.
뭔가 2번째 리모컨에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그 남자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다가 아내가 TV를 켜는 걸 봤는데 전원만 켜고 기다리니 TV 화면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리모컨으로 채널만 변경하는 것 같았다.
못 본 척 모른 척하고 있었다.
어라 간단하네.
리모컨으로 파워 켜고 또 다른 리모컨으로는 채널만 선택하는 거였어?
그 남자 이제나저제나 혼자 있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아내가 처갓집에 가고 그 남자가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TV에 연결된 콘센트 전원 스위치를 ON 한다.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켠다.
기다린다.
어라 정말이네. 일이 분 기다리니까 TV 화면이 자동으로 나와버리네. 오호라 신기해라.
결국은 TV를 켜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이게 얼마 만에 혼자서 TV를 보는 것이냐!
그 남자 신바람이 났다.
평소에는 혼자 있을 때 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데 겨울이라 날씨도 추운 요즘에 방 안에서 따뜻하게 있으면서 TV를 보니 너무나 행복했다.
이런 행복을 왜 진작에 누리지 못했을까!
아내한테는 TV 켜는 방법을 일아낸 걸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비밀을 밝히는 것보다는 계속 모른 척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쨌든 아내는 아직도 그 남자가 TV를 켜는 걸 모르는 줄 알고 있다.
하마터면 어느 날 깜빡 들킬 뻔했다.
아내가 TV를 켜면서 "어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돼있지 내가 이렇게 크게 했었나"라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속으로 하나의 기억을 저장했다.
"TV는 꺼질 때 설정돼 있던 음량이 켜질 때도 그대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니 시청 후에는 원래 음량으로 복원해 놓고 TV를 끄자"라고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맞는 내용인지 틀린 내용 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궁금하지 않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그 남자의 이 스토리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세상은 그 남자처럼 이렇게 TV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남자 아직도 가끔 고민한다.
TV를 켜게 된 사실을 알려줘야 하나!
그래봐야 주로 "세계테마여행"만 즐겨 보고 요즘 들어 "옥씨부인전"보는 게 전부인데,,,
때로는 진실을 숨기고 모르는 척 비밀로 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거짓말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세상 살면서 비밀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도 심심하진 않겠지^^
설마 그 남자가 TV를 켤 줄 아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내가 모른 척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