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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 남자 12화

그 남자의 첫 출근

그 남자 오늘(2024년 4월 1일)이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아니 나이 60을 바라보는 사람이 첫 출근이라니,
그도 그럴 것이 35년간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다니던 직장의 배려로 그곳에서 1년간의 계약직 업무가 끝나자마자 쉬지 않고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의 계약직(6개월 단위) 근무를 위해 첫 출근하는 날이다.
그전에 면접을 보러 한 번 가보긴 했지만 첫 출근하는 날이라 혹시 몰라 시간을 넉넉히 두고 조금은 이른 시간인 6시 50분쯤에 집을 나선다.
도보 포함해서 지하철로 1시간 1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의 새로운 직장,
처음에는 거리가 멀어 고민했지만 그만한 조건의 일자리가 쉽게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하고 있던 일의 계약이 끝나는 시기(2024년 3월 말)와 맞아떨어져 멀어도 쉬는 공백 없이 새직장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전 직장은 7시 30분쯤에 일어나서 세면하고 밥을 먹고 걸어가도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아직은 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생각하고 어디든 불러주는 곳만 있으면 찾아간다는 굳은 결의로 결정한 것이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이동하여 1호선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설동 역에서 내려 성수행 2호선으로 갈아타서 용답역에서 내린다.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동내,
낯설고,
설레고,


너무 빨리 집에서 나온 탓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출근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 새로운 환경을 눈에 익히기 위해 동내 주변을 조금 걸어본다.
용답역 왼쪽으로 나가니 청계천 수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청계천 물줄기가 이렇게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4월이라 그런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운치가 있다.
공원길을 조금 걷다가 시간을 보고 사무실로 가기 위해 용답역 오른쪽으로 나오니 용답역 나들시장 길이 나온다.
전통시장이라 그런지 나름 정감이 있고 아기자기한 게 이끌림이 온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하니 직원 몇 명이 경비를 해제하고 들어갈 수 있는 시간(8시 20분)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9시가 되어 출입문을 열고 첫 업무 시작~
직장은 다르지만 전 직장에서 그동안 해오던 업무의 연장선이라 일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긴장을 했는지 열심히 근무해서인지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점심 먹고 나니 또 금세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
정말이지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버린 것 같았다.
오후 5시 조금 넘어서 용답 나들시장을 거쳐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한 역 한 역 지날 때마다 지하철에 사람도 많아지기 시작하고 집에 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이 나이에 새로운 시작이라니^^ 그것도 다른 직장에서,
일단은 좋다.
이전의 일 년 계약직은 하루 중 반나절만 근무를 하는 것이라 점심도 집에 와서 먹어 세상의 반만 사는 것 같았는데 하루 온종일 세상과 함께 하니 사연도 많고 삶이 더 의욕적이고 다채롭다.
아쉬운 점은 이전의 직장은 계약직이라도 사원번호가 있어 사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어 1년 동안 많은(약 100권) 책을 읽었는데 이곳도 사내 도서관은 있는데 책을 대여할 수는 없다.
또 하나 전에는 오전만 근무하고 12시 퇴근이라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수강했었는데 이제는 종일 근무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저녁시간에만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골라야 하므로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반면에 좋은 점도 생겼다.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관찰할 시간이 많이 생기고 일찍 출근하면 공원 주변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일 좋은 것은 반나절만 근무할 때는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매일 청소를 해야 하고 집안일을 도왔는데 이제는 안 해도 된다는 것^^
(주말에만 한두 번 청소한다)
아내의 잔소리를 조금만 들어도 된다는 것^^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다.
불편한 게 있으면 편한 것도 생기고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생기고~
그나저나 부족한 마음의 양식은 어떻게 보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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