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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이어가는 한 집에 같이 살기

날씨가 추운 탓도 있었지만 그 남자 어쩌다가 보니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빈둥빈둥 는 게 보기 싫었는지 이것저것 해보라고 시킵니다.

먼저 늙은 호박을 손으로 잡기 좋게 자릅니다.

이번엔 껍질을 벗기고 조그맣게 자른 후 씻어서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합니다.

기포가 생기면서 끓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끓고 있는 호박이 뭉치지 않게 으깨주며 올리고당도 넣고 고구마도 썰어 고 쌀도 조금 넣습니다.

먹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는군요^^

시간이 조금 지나니 간을 보고 소금도 넣네요.

구경만 하지 말고 좀 저어보라 해서 주걱을 잡고 젖는데 호박이 끓으면서 국물이 손에 닿자 어찌나 뜨거운지 그 남자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 공짜로 먹는 음식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

누군가의 손으로 수고가 들어가고 시간을 투자해야 맛있는 음식이 완성됩니다.

드디어 호박죽이 완성됐습니다

이번엔 무엇을 하려는지 그 남자에게 무를 썰라고 하네요.

양파도 썰어 넣고, 멸치도 넣고, 김치 국물 넣고, 마늘 쪄서 넣고, 파도 썰어 넣고, 무국을 끓인다고 합니다.

매일 하라고 하면 그렇지만 처음이고 잠깐이라 그런지 글을 쓰는 것보다 너무 재미있네요^^

무국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네요. 비주얼도 좋고 나름 얼큰한 게 맛도 일품이네요.

드디어 겨울철의 별미 무국도 완성됐습니다

그 남자 100프로 본인의 손으로만 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도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손수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듯한 뭔가 뿌듯한 성취의 희열과 보람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 것 같았는지 이것저것 자꾸 시킵니다.

김도 구워 보기도 하고, 오징어채도 작게 자르고 하다 보니 하루의 시간이 금방 갑니다.

주부들이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쉬어도 되는데 집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아내가 고맙기도 하지만 그 남자 차라리 휴일에도 출근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오늘도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가정의 수호신들이여 당신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그 남자가 일을 도와주는 데에는 일이 끝난 후에 있을 보장된 자유시간에 대한 기대와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심오한 꿍꿍이 속이 있습니다.

얼듯 보기에는 한 집에 같이 살며 공생하는 듯 보이지만 혼자 살기 위한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혼자가 됐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게 하여 불편함 없이 혼자서도 잘 살기 위한 준비라고나 할까요!

언젠가는 누구나 혼자가 됩니다.

물리적인 노화나 갑작스러운 생명의 단절이 아니더라도 별거, 이혼 등의 사유로 아주 쉽게 또는 어렵사리 어느 날 혼자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빗자루도 쓰다 보면 무뎌지고 잘 쓸어 담지 못하듯이 사람도 너무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빗자루 질도 못한다느니 쓸어 담지 못한다느니 서로를 잘 쓸어주지도 담아내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 남자 때로는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에 상처받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의 침통함에 고민과 회의를 느낄 때도 많지만 몸과 마음을 다잡아 가 아직은 한집에 같이 사는 연습을 통해 그날을 조금씩 조금씩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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