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오늘도 여지없이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밥을 먹고 출출한 시간에 즈음하여 아내가 며칠 전에 먹기 좋게 잘라 놓은 육포를 몇 개 집어먹었다.
사실 이 육포는 2024년 8월로 유통기한이 지나 처갓집에 남아 있던 것을 아내가 저번주에 가져온 것이다.
아내는 자르면서 몇 가닥 집어먹고는 다시 포장지에 넣어 두었었다.
그 남자는 오늘 중으로 육포를 다 먹으려고 시간을 배분해서 조금씩 먹으려는 계획이었다.
얼마 후 그 남자 며칠 전에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지난번에 회사에서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 둔 식혜 언제 먹을 거냐"라고 한 말.
그래서 피트병에 들어 있는 식혜를 꺼내 흔들어서 컵에 한 잔 따라 마셔 본다.
식혜에서 웬 숙성된 막걸리 냄새와 맛이 난다.
찜찜해서 삼분의 이 정도 마시다가 처갓집에 가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 지난번에 내가 가져온 식혜를 먹어보니 숙성된 막걸리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먹어도 괜찮겠지?"라며 물어본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냐고 먹는 사람이 판단하라며 답답하다고 전화를 끊는다.
그 남자 컵에다 따라 놓은 식혜를 더 마실까 말까 고민하다가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집에서 만든 식혜는 약 5일 안에는 먹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순간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이번엔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거 가져왔을 때 네가(그 남자의 아내) 한 입 먹어봤는데, 시장에서 만든 호박식혜 같은데, 이상한 냄새나면 먹지 말고 버려 이 바보야"라고 하는 것이다.
"어머 어떻게, 나 이거 반 넘게 마셨는데, 나 식중독 걸리는 거 아니야, 어떡하지"라며 호들갑을 떨자.
"이런 멍청이"라고 하면서 아내는 전화를 끊는다.
생각해 보니 그 남자가 식혜를 가져와서 냉장고 넣는지 약 보름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아내가 전에도 식혜 안 먹냐며 계속 먹으라고 했는데도 까맣게 잊고 그냥 지나쳐 버렸었다.
그 남자 아내의 말을 듣고 남아 있던 식혜를 미련 없이
세면대에 모두 쏟아부었다.
그 남자 순간 금요일 아침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청소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빵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져갔다.
그 남자 금요일 아침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청소 아주머니로부터 빵을 하나 받았었다.
일찍 출근해서 자동차 안에서 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출출할 때 먹으라고 빵(흑임자 크림 소부루빵)을 하나 주었다.
고맙다고 받고서는 아침에 커피 마시면서 먹으려고 손에 들고 차에서 나와 직원들이 와서 출입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남자 손에 든 빵을 본 청소 아주머니 왈! "당신(청소아주머니) 먹으라고 준 것을 그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을 여직원이 보면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다"라며 빨리 차에 두고 오라고 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 배고프면 먹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부리나케 차에 두고 왔다.
(뭐야, 아침에 파리바게트에서 여직원을 만나 당신 그러니까 청소아주머니 드시라고 사준 걸 그 남자한테 준거야?)
그렇지만 퇴근할 때도 배가 고프지 않고 차도 밀리지 않아 먹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져가서는 맛있을 것 같아서 안 먹고 가져왔다며 아내에게 한번 먹어보라며 주었다.
그러고는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빵을 보더니, 이 빵 유통기한이 지났는데라고 말하며 자기는 안 먹을 테니 먹으려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정말로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나한테 먹으라고 줬다고, 그게 말이 돼'라며 대꾸하고 '뭐 빵이 15일이 유통기간인데 좀 지나서 먹는다고 문제가 있겠어!'라며 지나쳤었다.
토요일은 처갓집에 아내 데려다주고 본가에 들러 저녁을 먹고 오느라 빵 먹을 시간이 없어서 일요일인 오늘(그러니까 15일 유통기한인 크림빵을 17일에 받아와서는 19일에) 먹으려고 꺼내는 순간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대체 이 빵은 어디서 누가 언제 구입한 것일까'라는 의문? 그래서 네이버에 검색해서 우리 회사 앞에 있는 파리바게트 점에 전화를 해봤다.
마치 그 남자가 구입한 것처럼 "죄송한데요 제가 금요일 '흑임자 크림 소보루빵'을 사 왔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가져왔는데 집에 와서 먹으려고 보니까 유통기한이 15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제가 구입한 날짜는 17일인데, 이럴 수도 있나요?"
그 남자 파리바게트 직원으로부터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 직원 왈!
"고객님 '흑임자 크림 소보루빵'이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건 맞는데요, 저희 지점에서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러면 그 남자한테 이 빵을 건네준 청소 아주머니는 분명 "아침에 여직원 몇이 커피 살 때 당신 먹으라고 사준 것을 나를 생각해서 준다"라고 말하며 줬는데 이 빵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리고 왜 그 남자가 처음에 사무실에서 먹으려고 차에서 들고 나왔을 때 여직원이 당신(청소 아주머니) 사준 건데 그 남자가 들고 있으면 서운하게 생각한다고 차에 갔다 놓고 오라고 했을까?
집에서 먹다가 남은 것을 가져온 것일까? 아니면 누구한테 받은 걸 가져와 다시 나에게 준 것일까?
그날 아침에는 나를 생각해서 가져온 빵이라고 고맙게 생각을 했었는데 단 며칠 사이에 그 남자는 의구심에 빠졌다. 아니,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먹으라고 줄 정도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취급하는 거야!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과연 그 남자에게 빵을 준 청소 아주머니는 유통기한이 지난 빵임을 알고 주었을까!
그 남자 그것이 계속 궁금하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어쨌든 앞으로는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면 안 되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어쨌거나 그 남자가 생각하는 청소 아주머니에 대한 그 남자의 생각에는 조금 금이 갔다.
그 금이 메꿔질 수 있을지!
그 남자가 같이 일하는 시간 동안 그 금이 메꿔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남자 자기 말고는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싶어졌다.
세상은 아무도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구나!
아니야 청소아주머니에게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무슨 사정은 개뿔,
그 남자 육포 유통기한도 검색해 보다가 유통기한이 너무 지난 육포는 식중독 위험이 있다는 내용을 읽어보고는 무서워서 남아있는 육포도 다 버렸다.
역시 아는 것은 병이다.
아침까지도 잘 먹던 육포를 미련 없이 다 버리다니!
(아내는 왜 자기네 집에 있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육포를 왜 우리 집으로 가져왔을까! 그리고 먹기 좋게 잘라 놓고 자기는 여태껏 왜 한 조각만 먹었을까? 유통기한이 너무 지나 당신 부모는 먹으면 안 되고 주념부리 좋아하는 그 남자가 다 먹고 뒈지라는 건가?)
아내가 물어보면 육포를 버렸다면 아깝게 왜 버렸다며 잔소리할 것이니 육포는 다 먹었다고 하면 될 것이고 빵은 우리 집에다 버리기가 싫다.
월요일 회사에 출근해서 회사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이유는 원래 온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절대 그 빵을 준 청소 아주머니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버릴 것이다.
그냥 내 마음이 알리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미움과 원망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