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갑자기 본가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유인즉슨 설날이라 어제까지 사람이 많다가 혼자가 된 엄마가 외로울까 봐,
"엄마 뭐해요. 식사는 하셨어요."
밥 먹었냐고 물어보길래,
"어제 하루 종일 너무 많이 먹었서 아직도 배가 안 고프지만 조금 먹었어요."(사실 안 먹음^^)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해보자.
그 남자의 아버지는 2년 전 설 다음날 그러니까 구정 다음날 돌아가셨다.(치매로 몇 년간 고생하다가)
그래서 제사를 구정설 당일 저녁에 지낸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날에 차례와 제사가 겹쳐 구정 날 오전에는 차례를 치르지 않고 저녁에 제사만 지내는 걸로 가족들이 모여 결정을 했다.
제사 날이 가까워지면 2, 3일 전부터 누나와 여동생들이 본가에 가서 제사상에 올릴 나물, 전 등 제사 음식들을 준비한다.
당신 그러니까 그 남자의 어머니도 제사에는 온갖 신경을 다 쏟아붓는다.
좋은 과일을 올려놓으려고 미리미리 사과, 배, 밤, 대추 등을 준비한다.
당신은 제사상에 음식을 놓을 때도 많이만 놓으려 하신다.
제사상의 크기는 한정돼 있고 제기 그릇도 한정돼 있는데 많이 많이만 말씀하신다.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마음이 허전해서 그런 것 같다.
제일 못마땅한 것은 준비한 양이 많아도 제상상에 올리기 전에는 손을 못 대게 하는 것이다.
미리 집어 먹으면 좀 어때서,
그리고 또 하나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니(그 남자)가 갑자기 집에 와서 아버지가 너를 보고 경찰이 당신 잡으러 온 줄 알고 놀래 가지고 안방에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장롱을 잡아당겨 넘어져서 다리를 다쳐서 더 빨리 돌아가신 거다"라고 제사 때마다 그 남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제사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돌아가신 사람이 제사를 하면 저승에서 이승으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가족들을 보고 가는 것일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 아침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그런 말을 들었다. "사람은 죽어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가족들에게서 잊힐 때 그때야 비로소 죽는 거라는 말"
사실 그 남자도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 남자가 아버지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을 때 그때가 아버지가 진짜로 돌아가신 거라는 생각을 했었었다.
그렇다면 제사 때마다 아버지가 오셔서 식사를 하고 간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내려오셔서 편하게 식사하고 가시게 시간을 좀 많이 드려라, 그러고 아버지가 저승의 친구분들도 같이 모시고 와서 식사하게 많이 차리라고 하시는데 그런 말들이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일까?
그리고 제사 때마다 자식들이 모여서 오손도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아버지도 기분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현실과 미신 사이의 이런 것들이 혼란스럽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마음을 경건히 하면서 그분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제사일 것이다.
사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면 지금처럼 정성을 들여서 제사를 유지해 갈 수 있을지 그 남자는 장담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물론 누나와 여동생들이 가만히 안 있겠지)
그리고 그 남자의 자식에게도 할아버지와 그 남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하기도 싫고 그걸 기대하지도 않으려는 생각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 남자의 기억과 제사도 그 남자의 삶에서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세상도 그렇게 변하고 있고 더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도 완전히 잊히게 되는 거겠지!
그때야 비로소 아버지는 이생에서의 인연을 끊는 것이겠지!
그 남자는 죽고 나서 언제쯤 이 세상에서 잊힐까?
명절이 끝나는 날에 조용히 혼자 앉아 이생과 저 생을 넘나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