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뭐길래!
달력 하나로 웃고, 달력 하나 때문에 쌍욕을 듣고,
해마다 12월이 되면 달력으로 큰 홍역을 치른다.
달력을 교부하기 며칠 전부터 하루에도 수십 명 정도 "달력 언제 나와요?"라며 물어보는 고객들이 많이 오신다.
"네 며칠부터 3일간 교부할 것이니 그때 꼭 오세요. 늦게 오시면 소진돼서 못 받아갈 수도 있으니 일찍 오세요." 그렇게 오시는 분마다 당부에 당부 신신당부를 한다.
"탁상달력도 나오죠?"
"네 이번에는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못 받아갈 수도 있어요"
나는 무엇이든 확정해서 말할 수는 없고 조심스럽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전에 안내를 드리고 조심스럽게 얘기해도 달력 교부가 끝난 다음에 오시는 고객들이 많이 있다.
"혹시 남은 달력 없어요."
"네 교부가 끝난 상태라 다 소진되고 지금은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남은 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요 고객들을 위해서 비상으로 남겨둔 달력은 있다. 그렇지만 일반 고객들에게 교부할 달력은 거의 어느 정도 선에서 소진이 되면 더 이상 교부를 하지 않는다.
고객들 중에는
"나는 30년 동안 이 은행만 거래했는데 달력을 한 번도 받아간 적이 없어요. 앞으로 모든 거래를 끊어야겠어요"
나는 '당신이 매년 약속된 시간에 안 오시니까 달력을 못 받아가시는 거죠?'라고 속으로 되뇌인다.
어느 고객들은 "달력 진짜 없어요."라고 묻고 또 묻고 집요하게 물어본다. 그리고 결국에는 공손하게 묻다가 나중에 확실히 없다는 답변을 들으면 그땐 쌍욕을 하고 돌아간다.
물론 은행에서 원하는 고객 모두에게 아무 때나 달력을 교부하면 받아가는 고객이나 주는 직원이나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한된 수량을 원하는 고객에게 나눠주기 위해 날짜를 정해 서로 약속을 하는 것인데 그 약속을 저버리고 지나서 온 고객들은 달력이 없다는 것을 수긍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 나오는 도발적인 태도는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사실 요즘은 한 은행에서 달력을 받지 못했다고 다른 금융기관을 통해서라도 달력 하나 정도도 구하지 못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런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너그러운 관용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달력교부도 하나의 서비스인 것이지 은행의 의무는 아닌 것이다.
달력 하나로 당신과 우리의 마음이 엇나갔다면 이제 풀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