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이가 지긋한 분이(90은 넘은 듯) 오셔서 "날 좀 도와주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도저히 못 알아들어서 오셨단다.
무엇을 하시다 오신 건지 자초 지종을 여쭤 봐도 설명을 못하신다.
어떤 것을 하다가 안 돼서 오신 것인지를 알아야 내가 도와줄 텐데 대답을 하지 못하신다.
"어르신 무엇을 하시다 오신 건데요?"
"음 내가 뭘 하다가 왔는데 도저히 못 알아들어서 왔어"
"그러니까요, 무엇을 하시다 못 알아들어서 오신 거냐고요?"
"회사에서 뭘 해오라는데 잘 모르겠어"
"회사요, 그럼 회사에 다시 전화를 해보시면 되잖아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통화 내역을 찾아보시더니 다시 전화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아 핸드폰을 잠깐 줘보라고 했다.
나는 핸드폰을 받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 2G 폴더폰이었다.
나도 너무 오랜만에 써보는 기기라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반복하며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할아버지가 전화한 곳으로 가까스로 통화를 했다.
할아버지와 같이 들으려고 일부러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알고 보니 홈쇼핑 회사인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어르신한테 홈쇼핑에서 어떤 물건을 사시려는 것이 아닌지 다시 얘기해 보니까 "건강식품을 사려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몰라서 핸드폰을 들고 왔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나는 상담원과 연결해서 쌍방향으로 대화를 하면서 도와 드리려고 다시 통화를 시도해 봤는데 중요한 것은 안내 멘트에 상담원으로 연결되는 안내번호는 없었다.
"XXX 고객님 안녕하세요. 주문하신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1번을 주문한 내용을 취소하시려면 2번을 누르세요"라는 단지 2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이었다.
사람과 대화하며 통화를 할 수 있는 상담원 연결에 대한 안내멘트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1번을 눌러보았다.
아 그랬더니 "주문하신 상품의 입금 계좌를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렸으니 상품 발송을 원하시면 확인해 보세요."라는 멘트만 나오더니 전화가 자동으로 끊기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런데 그 어르신의 핸드폰에는 카카오톡도 깔려있지 않았고 카카오톡을 깔 수 있는 용량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멘붕,
그래서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다.
"어르신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이건 제가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혹시 자제분들이 집에 오면 그때 한번 도와달라고 해보세요" 라면서 되돌려 보냈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알고 힘없이 돌아서 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자식들이 있으면 주문해 달라고 하면 좋으련만,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한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혼자서만 그렇게 애를 쓰시는 건지,
아니면 도와줄 자식들 조차 없는 건지,
혹시 아파 누워 있는 할머니를 위해 건강식품을 사시려는 것은 아닌지,
보이스피싱 등 사기는 아니겠지 등등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의 심경을 복잡하게만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끝까지 도와주질 못해서 아쉽고 후회되기도 했다.(혹시 요즘 나오는 2G 폴더폰이었다면 카카오톡을 깔아 보기라도 할걸,)
당신이 원하는 것을 구매했더라면 그 물건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만이라도 큰 행복 속에서 지내실 수 있으셨을 텐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