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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Nov 21. 2020

캐나다에서 출산하기(를 옆에서 지켜보기) - 3

만삭인 상태로 3,000km 거리를 이사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캐나다에서 주를 이동한다는 것은 나라를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복잡한 일이다. 운전면허증부터 차량 등록도 다시 해야 하고 자동차 보험도 바꾸어야 한다. 헬스 카드(의료보험)도 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시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의료보험의 경우 주마다 의료 혜택의 범위가 다를 수 있고 다른 주의 헬스 카드를 가지고 가면 병원에서 안 받아 주는 경우도 있다(나는 실제로 알버타에서 사스카추완으로 이사를 했을 때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따라서 과연 사스카추완의 헬스 카드를 들고 킹스턴에 가서 무사히 출산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당시 상황이 정말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가서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임신 36주 차에 리자이나 공항에서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장모님이 출산을 도와주시기로 하였기 때문에 토론토에서 장모님을 만나서 모두 함께 차를 타고 킹스턴으로 향했다(사실 장모님 비행기표도 처음에는 리자이나 도착이었는데 부랴부랴 토론토로 변경하였다). 


토론토 공항에서 장모님을 기다리며. 이 사진을 보면 그때 고생했던 것이 생각나 언제나 가슴이 짠하다. 


그런데 와이프가 어머님을 만나서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토론토에서 킹스턴으로 가는 길에서 갑자기 진통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가진통이겠지 했는데 가는 길 내내 10분 간격으로 계속 진통이 와서 이것은 진짜 아기가 나오려는가 보다 싶어서 무척 긴장되었다. 킹스턴이라고는 내가 2~3주 전에 집을 구하려고 한 번, 그것도 4시간 정도 와 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병원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분만실로 달려가게 생겼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킹스턴의 임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병원을 가보려고 했는데 와이프가 다시 마음이 놓였는지 기적같이 진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조금 더 지켜보았는데 정말 진통이 없어서 그날은 짐을 풀고 집에서 쉬었다.


다음날 어쨌든 병원을 가보긴 해야 하니 근처에 있는 워크인 클리닉을 찾아가 보았다. 접수하는 곳에 가서 임신 36주 차인데 리자이나에서 왔다고, 의사를 만나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에도 병원에서는 자기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킹스턴 병원(Kingston General Hospital, KGH)의 산부인과로 병동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원 주소와 산부인과기 위치한 층을 적어서 KGH로 무작정 찾아가 보았다. 놀랍게도 KGH는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리자이나에서 나타난 우리들을 위해서 바로 OB 닥터도 연결해 주었다. 또 접수할 때 사스카추완의 헬스 카드를 내밀었지만 OOP(Out of Province) 환자라고 특별히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킹스턴에서 다시 OB 닥터와 연결이 되었고, 그 이후 한 번 더 OB 닥터에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진료할 때 의사 선생님이 다음번에는 분만실에서 보자고 했는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었으니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한국에서 출산을 하였을 때는 어느 순간 남편은 나가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출산 과정 내내 나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만을 하고 나서 의사와 간호사가 아이를 바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탯줄이 붙어있는 상태 그대로 아이를 엄마에게 주어 오랫동안 안고 있게 하였다(그 사이 둘째 녀석은 엄마 배에 오줌을 쌌다).


갓 태어난 둘째의 모습. 쭈글탱이다. 


엄마와 아기가 조금 안정이 되고 나서 나에게 탯줄을 자르라고 하였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에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탯줄 자르기에 실패하였다. 그 이후 아이의 몸무게도 측정하고 심장 소리도 들어 보았다. 기본적인 확인이 끝나자 간호사도 병실을 떠났고 1시간 정도 우리와 아이만 병실에 남게 되었다. 이렇게 갓난아이와 병실에 있어 본 것은 또 처음이라 둘째였음에도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1시간 정도 후 간호사가 들어왔고 우리는 분만실에서 산부인과 병실로 이동을 하였다. 


이렇게 좋은 KGH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일인실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자마자 이인실에 있으려니 병실에 있는 사람들 서로 잠도 자기 어려웠다. 그리고 옆 침대에 있는 사람들은 간간히 손님들도 찾아왔기 때문에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옆 침대를 쓰는 사람도 엄청 불편했는지, 놀랍게도, 입원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퇴원을 하였다. 서양 아주머니들은 기골이 장대해서 그런지 정말 회복이 빠르다.


출산 후 먹는 미역국이 일품이겠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산모들에게도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었다(남는 것은 물론 내가 먹었다). 아무튼 셋째 출산 이야기를 쓸 때 먹는 것이나 출산 이후의 검사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기로 하고 출산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의 다사다난했던 둘째의 출산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게 되지만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Jaundice, 즉 황달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우리 둘째의 황달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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