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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23. 2020

캐나다에서 출산하기(를 옆에서 지켜보기) - 2

와이프는 만삭, 나는 해고

와이프가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을 2.5개월 정도 앞둔 2016년 6월경이었다.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처럼 2016년 6월 8일,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았다.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통지를 받고 나서 삼일 정도는 밤에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당시는 둘째가 태어나기까지 겨우 2~3달밖에 안 남았고, 집을 구입한 지 3달밖에 안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은행 빚도 눈덩이같이 남아 있고 와이프의 배도 눈덩이 불어나는 이 상황에서 두 발 뻗고 자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해고가 쉽다고 듣긴 하였지만 내가 그렇게 될지는 전혀 예상을 못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사스카추완 주 정부의 공무원 노조 (SGEU, Saskatchewan Government and General Employees' Union)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지방 공무원 정도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우를 생각해서 설마 회사가 노조원을 그렇게 쉽게 내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서는 공무원이든 노조원이든 회사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자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면 그냥 내보낼 수 있었다.


물론 회사가 노조원을 해고할 때는 단체협약에 따라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노조원을 해고할 경우 항상 나중에 들어온 사람을 먼저 내보내게 된다. 따라서 우리 회사에서는 가장 늦게 입사를 했던 내가 언제나 가장 먼저 나가야 할 대상 1호였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노조에 속해있던 관계로 해고 60일 전에 통지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아직 충격과 분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쯤 노조원이 아니었던 엔지니어 2명도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들은 노조에 속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통지를 받자마자 바로 짐을 싸고 나가서 그 후로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어쨌든 일주일 정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계속 살아 나아가야 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기존에 하던 일과 동일한 일을 하는 온타리오의 기관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캐나다에서 가장 동쪽으로 가본 곳은 매니토바의 위니펙이었다. 게다가 석유 업계(Oil & Gas Industries)와 관련이 큰 내 경력을 고려했을 때 내가 온타리오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따라서 온타리오는 어떤 곳인지 잘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아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둘째 출산 한 달 반을 앞두고 온타리오의 킹스턴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리자이나에서 킹스턴은 약 3,000km 떨어짐)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사를 가야 할 것이라면 아이를 낳고 가는 것보다 가서 낳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사실 만삭의 와이프를 생각한다면 조금 위험한 결정이긴 하였다. 왜냐하면 임신 말기에 몇 주 동안이나 산부인과 의사를 전혀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자이나를 떠나기 전 우리가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리자이나를 떠나게 되었다고 OB 닥터(Obstetrician, 산부인과 의사)에게 말을 하자 그 의사는 'Good Luck' 이라며 더 이상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가서 잘 낳으라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이래서 이 의사의 평판이 별로 좋은가 보다). 그래서 결국 임신 34주 차부터 OB 닥터도 없고 패밀리 닥터도 없는 상태에서 출산을 맞이하게 되었다. 


리자이나를 떠나오기 직전, 박물관(RSM)의 열화상 카메라 사진. 뱃속에 둘째가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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