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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Nov 21. 2020

캐나다에서 출산하기(를 옆에서 지켜보기) - 1

캐나다에서 첫 임신

캐나다에서 살게 된 지 1년 정도가 지난 후 첫째만으로는 무엇인가 외로워 2015년 말에 둘째를 낳기로 결심하고 와이프가 사스카추완의 리자이나에서 임신을 하였다. 캐나다에서는 임신을 하게 되면 산부인과를 찾아가기 전에 우선 패밀리 닥터를 찾아가야 한다. 


당시 우리의 패밀리 닥터는 사람이 매우 좋은 우크라이나 아저씨였다. 환자와 대화를 정말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보통 방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30~40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내가 병원에 가면 이 아저씨와 주로 북한 이야기나 유도 이야기를 하였다. 아저씨가 우크라이나에서 살았을 때는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 아저씨도 나도 유도를 꽤나 오랫동안 했었기 때문에 보통 병실에 들어가면 아저씨와 30분 정도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병원에 자주 갈 일이 없어서 의사 아저씨와 그렇게 오래 이야기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의사 아저씨와 이야기를 오래 해 볼 일이 어디 있겠냐 싶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임신 이후 매달 병원에 가야 했기 때문에 그 아저씨의 입담으로 인하여 병원에서 대기하는 시간과 진료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의사 선생님은 매우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 병원의 설비는 (비록 내가 살아 본 시대는 아지니만) 우리나라 70년대의 병원이 그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났다. 둘째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러한 점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둘째가 생기고 나서보니 한국에서 첫째를 낳기 위해 다녔던 병원과 비교되어 어떤 점에서는 놀라울 정도였다.


가장 처음 놀란 것은 출산예정일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나라의 산부인과였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초음파 기계로 아이를 확인한 후 심장소리도 들려주고, 태아의 길이를 확인하여 출산예정일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력처럼 날짜가 적혀있는 동그라한 표를 돌려서 출산예정일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언제 마지막으로 생리를 했는지 물은 후 달력을 돌려서 출산예정일을 알려주었다. 아주 올드패션드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바로 이런 달력을 돌려서 예정일을 알려주었다


 

와이프의 증언에 따르면 심장 소리를 듣는 기계도 엄청났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심장 소리를 들어보자며 책상 서랍을 뒤져서 이것이 과연 작동을 할까 싶은 라디오 같이 생긴 기계를 꺼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계로는 심장 소리가 너무 작게 들려서 한참 동안을 노력한 끝에야 겨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심장 소리를 찾은 이후에는 초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재고 나서 분당 심장 박동수를 계산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보통 이렇게 임신 초기에는 패밀리 닥터를 찾아가다가 임신 20주 정도가 되면 패밀리 닥터가 OB 닥터(Obstetrician)라고 불리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보내주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았던 리자이나에서는 임신 기간 중 필요한 초음파, 피, 소변 검사 등은 패밀리 닥터나 OB닥터가 그러한 검사를 해주는 랩(Lab)에 검사 요청을 하고 날짜가 잡히면 우리가 그곳으로 찾아가는 식이었다.


캐나다는 의료 비용이 기본적으로 무료이기 때문에 아주 필수 불가결한 검사만 받게 하는 것 같다. 초음파의 경우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임신 기간 중 2~3번 정도만 받게 된다(초음파 횟수는 주 별로 다른 듯하다. 사스카추완의 리자이나에서는 2회만 받았으나 나중에 보니 온타리오 킹스턴에서는 3회를 했다). 


아무튼 사람 좋은 우리의 패밀리 닥터는 와이프를 꽤나 오랫동안 직접 진료하였다. 보통 20주 전후로 OB닥터로 보내주는데 21주 차가 넘도록 본인이 계속 진료를 했다. 그런데 21~22주 차 정도에 받은 피검사 결과 임신 당뇨 재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 검사 결과를 보자 우리의 패밀리 닥터는 이제 OB 닥터에게 보내야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서 그는 한 OB 닥터에게 우리를 받아 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OB 닥터가 담당할 수 있는 환자의 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보통 패밀리 닥터가 20주가 되기 전 미리 연락을 해서 환자를 보내겠다고 말을 해 놓는다. 하지만 우리 패밀리 닥터는 그것을 깜빡 잊고 있다가 22주가 넘어서 OB 닥터에게 연락을 하니 그 OB 닥터는 환자가 다 차 버려서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 패밀리 닥터는 이 의사 저 의사를 수소문한 끝에 우리를 받아주겠다는 의사를 찾을 수 있었고 결국 우리는 임신 당뇨 재검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서 처음으로 OB 닥터를 만나러 갔다. 온타리오와는 다르게 리자이나에서는 이러한 검사 결과는 오직 의사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처음 만난 OB 닥터는 와이프의 검사 결과를 보더니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Do you believe in God'이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뭐 당시에는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그 의사 선생님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 잘 될 거라면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신앙심이 깊고 좋은 의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런데 당시 리자이나 병원 분만실에서 일하고 있던 간호사와 친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 따르면 이 의사는 돈만 매우 밝히는 사람으로 참 별로라고 하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로서는 그냥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러고 보면 처음 보는 환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검사 결과도 좋게 나왔고, 평판이 별로이긴 해도 어쨌든 OB 닥터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그래서 별문제 없이 리자이나에서 아이를 잘 낳았다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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