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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Dec 26. 2020

이제는 안 믿어도 되는데

한 발 늦은 크리스마스 이야기

내가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에는 이미 그런 것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에 사는 아이들은 아직 순진한 면이 있는지 산타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학교 나이가 되도록(7~8학년) 산타를 믿는 아이들이 있다. 이 정도 되면 이 녀석들이 오히려 우리들을 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만 4살인 둘째 녀석은 물론이고 이제는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도 산타가 가짜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 짓궂은 아이들이 종종 '사실 선물은 엄마 아빠가 사다 주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산타를 믿는 분위기라 믿음이 잘 흔들리지 않는다.


한편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산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크리스마스 엘프들이 있다(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850년경부터 등장한다고 한다). 이 엘프들은 주로 산타의 작업실(Workshop)에서 장난감을 만들다던지 사슴들을 돌보는 등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쇼핑몰에 산타가 사진을 찍으러 오면 사람들을 안내하는 역할이 가장 큰 역할이 된 듯하다(쇼핑몰에서 엘프로 일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데이비드 시대리스의 Santaland Diaries라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그런데 2004년 'The Elf on the Shelf'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또다시 엘프의 주요 역할이 달라지게 된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이후에 떨이로 산 엘프. 원래 $ 42.95였으나 80%를 할인해서 샀다. YAY!!


이 책에서 엘프는 집에 머물면서 하루 종일 아이들을 살펴보다가 밤이 되면 산타가 있는 북극으로 날아가 아이들이 착한 일을 했는지 나쁜 일을 했는지 보고를 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사실 말이 엘프지 이 정도면 완전히 프락치 같은 녀석이다). 북극에 갔다가 돌아올 때 항상 다른 자리에 앉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 엘프를 찾느라 바쁘다. 그리고 사람이 이 엘프를 건드리면 마법을 잃어 산타에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온 이후 한동안 이 엘프가 우리 집에는 오지 않다가 작년부터 우리 집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2년 전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80% 할인을 하는 엘프를 발견한 이후부터 우리 집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이 녀석이 처음 집에 나타났을 때가 매우 극적이었다. 당시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이 우리 집에 묵고 계셨는데 와이프가 애들을 깨우며 '빨리 와봐 얘들아! 우리 집에도 엘프가 왔어!'라고 외쳤다. 그러자 갑자기 장인 어르신이 깜짝 놀라시며 '어쩐지 어제 밤새 무슨 소리가 많이 들리던데...'라고 하시며 후다닥 아래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카메라(핸드폰)를 들고 창밖을 보며 '거봐 어제 밖에서 소리가 크게 났다니까... 엘크가 있다고? 엘크 어디 있지?' 


나는 그런 장인 어르신을 보며 아이들의 동심을 살리기 위해 온 몸을 불태워 연기를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감동했다. 부탁드리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열심히 연기를 하시다니정말 텔레비전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연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장인 어르신은 정작 엘프가 있는 곳을 보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창밖에서 무엇을 찾고 계셨던 것이다. 


알고 보니 장인 어르신은 엘프가 아니라 밖에 엘크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기(?)였으니 애들이 안 믿고 배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온타리오에서 엘크가? 사진은 6년 전 재스퍼에서 본 엘크






아무튼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엘프가 다시 나타났다. 아이들은 11월 중순이 지나고부터 엘프가 언제 오냐고 언제 오냐고 물어보았지만 이 녀석이 나타나면 공교롭게도 나의 일이 많아지는 관계로 올해에는 12월이 다 되어서 나타났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우리 집 엘프. 이름은 조세핀(Josephine)이다.



어쩌다 보니 이 엘프는 첫째 녀석과 매일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낮 동안에 편지를 써 놓고 엘프 주변에 놔두면 밤 사이에 엘프가 답장을 써 주는 식이다. 문제는 이것이 모두 나의 일이라는 것인데, 매일 밤마다 엘프의 새로운 위치를 찾고 편지를 적는 것이 은근히 귀찮다. 심지어 딸아이는 엘프에게 바인더 표지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거나 다른 엘프나 루돌프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기도 해서 곤란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개인 정보 보호 때문에 다른 엘프들이나 루돌프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는 없다고 답하거나, 그림은 니가 그려라 색칠은 내가 하마라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래도 매번 거절하기가 그래서 카드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는 아래와 같이 멋진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엘프의 편지는 누가 봐도 아빠가 쓴 글씨인데 딸아이는 도대체 눈치를 못 채고 있다. 어쩌면 딸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일까?



가끔 밤에 일을 하다 보면(나는 낮에 밖에 나가 검사를 하고 저녁에 집에서 서류 정리를 한다) 엘프 옮기기와 편지 쓰기를 까먹기도 해서 올해에는 두 번이나 엘프가 움직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세 명의 아이들이 눈을 뜨면 모두 엘프를 찾아 나서는데 엘프가 움직이지 않는 날에는 모두 엄청 실망을 한다. 그런 날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조세핀이 어제 피곤했을까?'라는 식으로 자기변명을 했다.


엘프가 있을 자리를 고르는 것은 꽤나 창의력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어디에 두어야 하나 걱정이 된다. 



엘프는 한 달 정도 산타의 프락치 역할을 하다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와 함께 북극으로 돌아간다. 작년에는 몰랐는데 2년 동안이나 엘프와 한 몸이 되어 딸이랑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떠나는 날 편지를 쓰다가 은근히 가슴이 찡했다. 


캐나다에서는 산타가 주는 선물, 그리고 부모가 주는 선물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혹시 그래서 고학년 아이들은 일부러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산타나 엘프가 진짜라고 믿는 첫째 녀석을 보면 아직도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첫째는 엘프의 편지는 사실 아빠가 쓴 것이고 산타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지 궁금하다. 막상 알게 된다면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에 약간 슬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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