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Jun 13. 2022

우리를 하나로 묶는 컬러링

두 달 전(2022년 4월) 내가 사는 동네에는 코로나가 극성이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파도(웨이브)가 쳤기 때문에 이제는 몇 차 웨이브 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난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막내가 갑자기 토를 했다.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정말 아픈 것이었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프면 코로나를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니 우선 신속항원검사를 해보았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비록 PCR 검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어느 순간부터 정부에서 일반인에게는 PCR 검사를 제공하지 않음) 계속 토를 한다거나 다른 곳이 아픈 것이 아니라서 코로나는 아니겠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이 녀석이 그냥 너무 많이 먹어서 토를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무엇이든 이렇게나 맛있게 먹는 막내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하루가 지나고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둘째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자다가 이불에다 토를 하고 말았다. 토를 할 것 같다고 울면서 잠에서 깼을 때 어서 화장실로 보냈어야 했는데 나도 잠결이라 대처가 늦어 한밤 중에 이불 빨래를 해야 했다. 막내처럼 한 번 토하면 끝이겠지 싶어서 다른 이불을 꺼내서 재웠는데 갑자기 또 이불에다 토를 했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둘째는 다음 날이 되도록 배가 아파서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급하게 휴가를 내서 집에서 둘째를 데리고 있기로 했다. 한국에서였다면 물론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갔겠지만 여기서는 토를 한다고 병원에 갔다가는 큰 고생만 하고 오기 때문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토를 하든 설사를 하든, 배가 아프면 무조건 'Stomach Flu(스토먹 플루, 직역하면 '배 감기')'라고 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감기에 걸리 듯 이것도 바이러스로 인해서 배가 아픈 것이라서 그런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바이러스 감염된 것이라 항바이러스제(Antiviral Drug)가 있지 않은 이상 따로 약도 없으니 여기 의사들은 그저 탈수가 안되게 물을 잘 마시라는 소리만 한다. 계속 증상이 심하면 약국에 가서 타이레놀이나 그래볼(토할 때 먹는 약)을 사 먹으라는 소리와 함께.  


어쨌든 둘째는 무엇을 먹을 때마다 토를 했지만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것은 참 수월하기 그지없다. 중간에 책도 읽어 주고, TV도 틀어주고, 잠도 자게 하니 시간이 금방 갔다. 푹 쉬어서 그런지 더 이상 토는 하지 않았지만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해서 일단 하루는 더 집에서 데리고 있기로 하였다.


다음 날에는 내가 오전에 둘째를 보다가 와이프가 점심 무렵 일을 마치고 와서 교대를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둘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생각하면서 잠을 깼는데 정작 내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배가 엄청 아픈 것은 아니었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겨우 아침을 먹고 나서 둘째를 보고 있으려니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 같은 것이 누가 보아도 막내와 둘째에게 옮은 것이 분명했다. 내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어제는 참 수월했던 육아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책을 읽어주다가도 토를 할 것 같았고, 밥을 챙겨주다가도 토를 할 것 같았고, 앉아 있어도 토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와이프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요즘 우리 동네에 노로 바이러스가 돌고 있다고 했단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 동네 보건소(Health Unit)에서 온타리오와 저 멀리 브리티시컬럼비아(BC)에서 노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노로 바이러스의 발원지는 BC로 그곳에서 잡힌 굴이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굴을 먹었는지 아무튼 그 이후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굴이라는 것은 비싸서 만져보지도 못한 나로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차라리 내가 굴을 먹고 노로 바이러스에 걸린 것이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그 맛있는 굴은 누군가가 먹고 노로 바이러스만 약 4,500km를 달려 우리 집에 왔으니 분노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지 그다음부터 모든 가족이 차례차례 쓰러졌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 날 밤부터는 첫째도 토를 하기 시작했다. 다 큰 녀석이 이불에다 토를 하고, 땅바닥에다 토를 해서 끊임없이 치워야 했다. 나도 토할 것 같은데 (아무리 자식이지만) 다른 사람의 토를 치워주려니 쉽지가 않았다.


첫째의 증상은 가족 중에서도 가장 심해서 물만 먹어도 토를 했다. 토를 하러 화장실로 달려가는 중에도 못 참고 바닥에서 쏟아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대저택도 아닌데 말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중에는 급하면 토를 하라고 비닐봉지를 하나 쥐어주었다. 처음에는 설마 거기에 토를 할까 싶었지만 정말 거기에다가 토를 할 정도로 엄청났다. 그것도 두 번이나.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었다.


이 노로 바이러스는 우리 집에서 가장 튼튼한 와이프도 가만 두지 않았다. 결국 와이프마저 너무 아파서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와이프와 내가 동시에 아픈 적은 없었는데 둘 다 동시에 아프니 놀랄 만큼 힘들었다. 너무 아파서 우리 스스로도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 아이들 토 닦아 주고, 책 읽어 주고, 같이 놀아 주고, 밥 챙겨 주고, 씻겨 주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울고 싶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쉬자고 계속 TV만 틀어주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컬러링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구글에 'Colouring Pages'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무수히 많은 도안들이 검색되었다. 동물이면 동물, 공주면 공주, 과일이면 과일까지. 심지어 마리오, 페파 피그, 디즈니 등 유명 캐릭터의 도안들도 쉽게 검색이 되었다. 과연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했으니 아이들이 원하는 그림을 몇 개 찾아서 출력을 해주었고, 나는 십 분 정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굳이 노로 바이러스의 좋은 측면을 찾아야 한다면 그나마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다. 대부분 2~3일 안에 증상이 완화가 되는데 우리 집도 먼저 걸린 순으로 차례차례 회복이 되었다.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강도는 정말 대단했다.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이지만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모든 아이들(막내 포함 총 5명)이 토를 했고, 그 가족들도 모두 아팠다고 한다. 그리고 첫째의 친구 한 명도 가족이 전멸을 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변명을 하자면, 가장 처음 노로 바이러스에 걸린 집은 우리 집에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막내가 아프기 며칠 전에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이가 토를 했다던데 아마도 그 집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노로 바이러스는 일주일 만에 우리를 떠났지만 이때부터 우리 집에는 무수히 많은 컬러링 종이들이 쌓이게 되었다.







캐나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컬러링을 참 많이 한다(물론 저학년에서). 이때까지 별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둘째는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학교에서 색칠한 종이들을 집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일을 하는 와이프에 따르면 여자 아이, 남자아이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컬러링을 좋아하고, 심지어 어느 선생님 컴퓨터에는 'Emergency Colouring'이라는 폴더까지 있었다고 한다.


컬러링 도안에 대한 수요가 많기는 많은지 구글로 검색을 해보면 무수히 많은 (해외) 웹사이트들이 검색이 된다. 멀쩡해 보이는 사이트, 예를 들면 색연필 회사에서 만든 사이트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근본을 알 수 없는 사이트들이다. 왜 근본을 알 수 없냐면 운영자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도안의 출처도 어딘지 모르겠고,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이든 뭐든 그저 유입자 수를 늘려서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러한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 자체가 컬러링 도안을 받겠다는 강한 목적이 있어서 방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이 있든지 없든지, 유사한 사이트가 많든 지 적든지, 컬러링 도안만 잘 모아놓는다면 방문자가 꽤나 많을 것 같았다. 마침 블로그에는 더 이상 쓸 글이 없고, 브런치는 보는 사람이 없고, 유튜브는 망해 버린 나로서는 이런 컬러링 사이트가 한층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나도 이러한 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컬러링 도안'들을 만드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도안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저작권이 있는 캐릭터를 몰래 가져와서 내 것인 마냥 올리는 것은 양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과연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 며칠 고민을 해보니 애초에 저작권이 없는 그림들을 찾아서 컬러링 도안으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작권이 없는 자료 즉,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 저작권이 만료되었거나, 만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저작권 없이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퍼블릭 도메인인 자료들은 어느 누구나 무슨 용도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생각해 보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 자체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고, 영화로 만들 수도 있고,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작년에서야 처음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 퍼블릭 도메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플래닛 머니'의 슈퍼 히어로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는데 저작권이 만료된 슈퍼 히어로 캐릭터를 이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내용이다. 정말 흥미진진하니 팟캐스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드린다.





그림을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으니 본격적으로 컬러링 도안으로 만들 그림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컬러링 도안으로 사용할 그림이라면 라인아트와 같이 흑백에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찾아야 했다. 다양한 노력 끝에 무료로 사진이나 그림을 공유하는 픽사베이(https://pixabay.com/)라는 곳이 검색에 가장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주제, 예를 들면 강아지, 고양이 등을 키워드로 사진을 검색해서 도안으로 쓰기에 적당한 그림들을 모두 다운로드하였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2019년 이후 픽사베이에 등록된 그림들은 퍼블릭 도메인(CC0)은 아니다. 퍼블릭 도메인은 무엇을 하든 완전 자유지만 현재 픽사베이 라이선스 규정은 변경하지 않은 자료를 그대로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얼추 그림도 모았으니 이제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했다. 나의 처음 생각은 영어로 된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이상에야 영어로 된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겠지만 어차피 그림이 주가 되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영어로 사이트를 만들어 놓아야 전 세계의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을 테니 유입량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 블로그 사이트들은 우리나라 블로그들에 비하면 정말 형편이 없긴 하다. 내가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옮기 전에 일 년 정도 구글 블로그스팟을 사용해 보았는데 이것은 정말 재앙스러운 수준이었다. 결국 영어로 된 사이트를 운영하려면 도메인을 사서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러기에는 투자해야 할 비용이 너무 컸다. 물론 비용도 비용이지만 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할애하기에는 내가 그동안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


워드프레스 관련 책도 빌려 보고, 마음에 드는 도메인 주소까지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지만 우선 시험 삼아 티스토리에 올려보고 유입량이 많으면 그때 영어로 된 사이트를 만들어도 늦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티스토리에 freeactivities라는 주소로 블로그를 개설했다.



컬러링으로 하나 되는 이 좋은 세상!!!!



블로그를 개설하고 나서는 녹슨 나의 포토샵 실력을 이용해서 도안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15년 전에는 그럭저럭 했는데 한동안 포토샵을 쓸 일이 없다 보니 단축키도 잊어버렸을 정도라 편집하는데 시간이 꽤나 많이 걸렸다. 하지만 이것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서 이제는 한가할 때 될 성싶은 그림들을 다운로드하여 놓은 후 저녁에 4~5장 정도 도안을 만들어서 매일 같이 업로드를 하고 있다.


내 블로그에는 저작권이 있는 유명 캐릭터 도안들은 없으니 참신한 자료들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오바마, 총, 에펠탑, 마라도나 등등.


그런데 가끔씩은 너무 참신해서 문제가 있기는 하다. 주된 타깃이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그들이 도널드 트럼프나 마라도나에 관심이 있기는 할까 하는 그런 문제가.



freeactivities.tistory.com에서만 볼 수 있는 주옥같은 컬러링 도안들




이제 컬러링 도안 블로그를 운영한 지 두 달 정도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는 초반이라서 그런지 많아야 20~30명 정도가 방문을 하고 있다. 그래도 놀랍게도 얼마 전부터 애드센스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비록 몇 센트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하루에 달러 단위로 발생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그 수익을 이용해서 도메인을 사고 영어로 된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 만큼 이것이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컬러링 도안을 좋아하니 보람은 있다. 아이들마다 적어도 하루에 한 장 찍은 출력을 해주고 있는데 가끔씩 완성된 도안을 사진 찍어 '독자투고'란에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이 색칠을 하고 나면 으레 내 책상 위에 도안을 올려놓고 있다.



독자 투고 (좌)만 3세 아이의 강력한 성격이 느껴짐, (중)만 10세의 차분함이 느껴짐, (우)만 5세 아이의 창의성이 돋보임(전라도에는 가본 적도 없지만 불바다로 만듦)



노로 바이러스가 우리를 한 명씩 쓰러뜨렸지만 컬러링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화제의 컬러링 도안 사이트 링크는 아래에서!



이전 04화 파워리스 블로거의 유튜브 도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