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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Dec 01. 2022

2013 엑센트 수동, 그런데 에어컨이..

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6

회사도 싫고 파업도 싫은 내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사실 일 년 전에도 이직을 할까 생각하여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모두 연락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별로 급할 것은 없어서 연방 정부 일자리만 지원을 했더니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심지어 내가 검사를 다녔던 곳 중 두 군데에 전화를 걸어서 혹시 사람을 뽑는지 직접 물어보기까지 하였다.


그중 한 군데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회사가 있는 곳이 집에서 1시간 20분 떨어진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야 출퇴근할 때 버스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면 한 시간이 금방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약간 이야기가 다르다. 지하철과 버스같이 남이 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그 회사의 경우 편도 거리만 약 140km이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거나 프리징 레인(Freezing Rain)이 내리면 절대 갈 수 없는 거리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팬데믹 이후 많은 회사들이 하이브리드 형 근무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여기도 주 3회 정도 출근해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 회사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다른 곳에도 열심히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인공고를 확인하면서 갈만한 곳이 나오면 바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온타리오주의 킹스턴은 워낙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 큰 회사나 공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원래부터 일자리가 많이 없는데 특히 나같이 일하는 분야가 특수한 경우에는 정말 갈 곳이 없다.


그에 반해 토론토 주변에는 지원을 해보고 싶은 회사들이 꽤나 있었다. 원자력 관련된 일자리도 많았고, 예전에 한국에서 했던 일과 유사한 일자리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사를 갈 수는 없었다. 와이프가 다니고 있는 직장 그리고 애들 학교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토론토 주변(GTA)에서 집을 사려면 또다시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적한 동네가 좋아서 여기 살고 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렇게 사람이 많은 동네에 가서 고생하면서 살까 싶었다. 결국 최대한 킹스턴에서 가까운 곳에 일자리를 잡아서 일주일에 2~3번 출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회사에서 떠날 마음을 굳혔으니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차를 사야 하는 것이었다.






캐나다에 살다 보면, 특히 대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차는 필수이다. 그리고 가족수가 늘어나면 한 대도 부족하여 적어도 두 대는 있어야 원만한 생활이 가능할 정도이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이곳에서는 한 명이 차를 타고 출근을 해버리면 다른 가족들은 발이 묶이게 되니까 말이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 항상 회사에서 차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지난 7~8년 동안 우리 차 한 대와 회사 차 한 대로 그럭저럭 문제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파업이 시작되면서 회사에서 차를 회수해 가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차가 한 대밖에 없으니 내가 파업 활동에 참여하려고 차를 가지고 나가버리면 집에 남은 가족들은 슈퍼조차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와이프도 9월부터는 차를 가지고 일을 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파업에 참여하기도 어렵고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기도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차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문제는 바로 돈이었다. 차를 사기로 결심했을 때가 (2022년) 9월 중순이었는데 이미 두 달 이상 월급을 못 받고 있었기 때문에 차를 살만한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내년에 집 대출금을 갚을 목적으로 모아 둔 돈 약 10,000~15,000불 정도를 융통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우선 그 돈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중고차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고차 가격이 말도 못 할 만큼 올랐다고 하던데 그때 당시에는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 요즘 캐나다로 이민이나 유학을 오는 사람들은 좀 그렇겠다는 생각 정도만 들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차가 필요해서 직접 중고차 시세를 확인해 보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먼 길을 운전해서 출퇴근해야 하니 어차피 큰 차는 필요 없고 작은 차 위주로만 검색을 했지만 세금을 포함하면 아무리 못해도 20,000불은 있어야 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워낙 인기가 좋은 일본 차들은 물량 자체가 없었고 그나마 눈에 띄는 것들이 쉐보레 크루즈 혹은 현대 엘란트라(아반떼)였다.


며칠 동안 검색을 하다 보니 중고차 가격이 이렇게 비싸다면, 물론 돈은 없지만, 그냥 얼마 더 주고 새 차를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동네의 모든 딜러샵 홈페이지를 찾아보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의 중소형 자동차의 재고는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딜러샵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코나'의 재고가 보였는데 가격이 이만 불 초반밖에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팔렸는데 그냥 올라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어차피 집에서 놀고 있으니) 딜러샵에 가보기로 했다.



10만 km 정도 탄 아반떼가 세금 포함하면 22,594불(약 2,300만 원)!!



와이프가 차를 몰고 출근을 했기 때문에 내가 딜러샵까지 갈 수 있는 차가 없었다. 그나마 와이프가 일하는 곳이 집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스페어 키를 챙긴 후 자전거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트렁크에 집어넣고 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어린아이들이(와이프 직장이 학교임) 아저씨는 뭐 하나며 어디로 자전거를 타러 가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나는 또 구구절절이, 지금 내가 차가 없어서 와이프 차를 써야 하는데 여기다 자전거를 두고 가기가 그래서 트렁크에 집어넣은 다음에 차를 타려고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또다시, 그래서 아저씨는 어디로 자전거를 타러 가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응, 나 자전거 타러 어디 갈 거야 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현대자동차 딜러샵에 가보니 놀랍게도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코나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살펴보니 팔렸다는 사인이 붙어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딜러 아저씨에게 바로 코나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차는 시운전용이라서 판매하는 차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망할 X들이 팔지도 않는 차를 왜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X랄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론 문화인인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들어보니 코나나 엘란트라는 내년 봄이나 되어야 새 차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새 차를 살 돈도 없긴 하지만 차가 당장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니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없겠다고 말을 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생각을 했지만 어차피 집에 가도 (파업 중이라) 할 일이 없고 여기까지 온 기름도 아까워서 중고차라도 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딜러샵이 가지고 있는 중고차들도 몇 번이나 검색을 해 보았기 때문에 괜찮은 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밖에 나가서 그나마도 몇 대 없는 중고차들을 살펴보았는데 그중에 한 차가 눈에 띄었다. 홈페이지에서 보았을 때에는 다른 차보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차였다. 그것은 바로 2013년 액센트였는데 가격이 다른 차의 절반 가격인 9,950불밖에 하지 않았다. 크기만 고려한다면 지금 나에게 딱 적당한 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차도 깨끗하였고 안을 보니 10년 가까이 된 차라고 하기에는 놀랄 정도로 깨끗했다. 게다가 30,000km 정도밖에 타지 않은 것이었다.


딜러 아저씨에게 들어보니 할머니가 자기네 딜러샵에서 사서 몰던 차인데 최근에 다른 차로 바꾸면서 이 차를 파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슈퍼마켓 갈 때나 차를 모셨는지 일 년에 3,000km 정도밖에 운전을 하지 않으셨나 보다.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수동 차량이라는 것이었는데  22년 전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하고 첫 직장에서 4년 동안 포터를 몰아 본 나라면 며칠의 연습만으로 충분히 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쉽게도 2종 오토 면허를 가진 와이프는 운전이 불가능하겠지만(참고로 캐나다의 일반 운전면허는 오토/수동 구분이 없어서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는 있음).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 단점이 있기는 했다. 창문을 손으로 돌려서 내려야 했다(크랭크 창문). 우리 집의 첫 차였던 80년대 말 르망 이후 모든 창문이 크랭크 창문인 차를 몰아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어쨌든 가장 기본 모델에 아무런 옵션이 없어서 이렇게 저렴한가 보다 생각을 했다.


낮은 마일리지와, 깨끗함 그리고 가격에 반한 나는 이 차를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가서 세 명의 아이들이 뒷자리에 모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바로 계약을 맺었다.





일주일 후 잔금을 치르고 자동차 열쇠를 받았다. 집까지 10분 정도 운전을 해야 했는데 수동 승용차는 정말 오랜만에 운전을 해보는 것이라 우선 딜러샵 주차장을 몇 바퀴 돌아보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디어 도로로 나갔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역시 신호에 걸려서 멈춰야 했을 때 엄청 긴장이 되었다. 첫 신호에서는 시동이 꺼지지 않았는데 문제는 두 번째 신호에서 발생되었다. 한 번 멈춘 후 파란불이 되어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역시나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뒤에서 기다리는 차가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는데 긴장을 했는지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연히 하던 대로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려고 했다. 창문을 닫는 스위치가 있을 만한 위치에 손을 뻗었지만 이내 스위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손잡이를 돌려서 운전석 창문을 닫았다. 문제는 조수석 창문이었는데 차가 작아서 그런지 손을 뻗으니 충분히 닫을만했다(시간이 지나니 이제 운전하면서 네 개의 창문을 모두 열고 닫을 수 있음).


그다음에는 에어컨 스위치를 눌렀는데 응당 에어컨 스위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엥? 이게 모지? 혹시 다른 곳에 버튼이 있을까 싶어서 운전하면서 계속 찾아보았지만 버튼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온도를 조절하는 레버를 보니 보통이라면 'A/C Max'라고 쓰여있을 텐데 그 문구가 보이질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바로 깨달았다. 이 차에는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그것을 믿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나는 에어컨이 없다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에어컨 버튼을 찾았다. 집에 가서 자동차 매뉴얼을 꺼내서 에어컨 버튼이 있는 위치를 확인해 보기까지 했다.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아니 21세기에 에어컨이 없는 차가 있다고??


처음에는 이런 차를 나에게 판 딜러샵에게 분노가 느껴졌다. 아니 에어컨이 없다면 없다고 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예를 들어, TPMS가 없는데 그것이 없다고 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 내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에어컨이 없다고 말을 할 필요는 없었겠구나 싶었다. 해주는 것이 맞긴 하겠지만...


분노 단계가 지나고 합리화 단계에 들어가서는, 그래 어차피 가격이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어디 가서 이 돈으로 차를 살 수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나는 이 차를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차를 산 시기가 가을이라는 것이다. 여름에는 과연 이 차를 탈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급한 대로 반년은 탈 수 있겠지 생각했다.



수동에 에어컨도 없는 똥차이지만 그래도 파업이 끝날 때까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차를 타고 면접도 다니고, 애들도 실어 나르고, 장도 보았다. 파업이 끝난 지금은 비록 회사 차를 돌려받아서 이 차는 차고에 모셔두었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든 이 회사를 떠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곧 다시 몰고 다닐 날이 오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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