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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Dec 13. 2022

그래도 회사보다는 노조가 좋아

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7

비록 파업 기간 동안 월급을 받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일을 안 해도 되니까 처음 한 달 정도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활동을 시작한 이후 14-15년 동안 계속 일만 해왔기 때문에 오랜만에 몇 주 일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은근한 기쁨이었다. 게다가 지난여름 한국에 갔을 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생명보험을 해약하고 받은 돈이 조금 남아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버틸만했다.


그런데 2022년 7월 21일부터 시작된 파업 한 달이 지나도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주 한 주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가는데 회사는 전혀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우리가 이렇게 파업을 하고 있어도 배신자(Scab)들이 일을 잘도 하고 있는지 회사는 크리스마스까지도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회사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을 경제적으로 말라 죽이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어느새 9월이 되었고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자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내분이 일어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노조의 협상 방식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전혀 반응이 없는 피켓팅과 트위터를 통한 시위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 중순이 넘어가자 한 두 명씩 회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 지역 파업 리더였던 사람도 어느 순간 회사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노조 주간 미팅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모두가 사정이 다르니 각자 회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니 생활이 힘들었을 수도 있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보험이 끊겼으니 의료 비용이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에게 배신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으로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그동안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저 모아 둔 돈과 와이프의 월급으로 몇 주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파업이 언제 끝날지 전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학교에서 일하는 와이프의 월급은 10월이 지나서야 들어오기 때문에 어쨌든 그때까지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나마 노조에서 파업 수당 명목으로 매주 515불의 돈이 들어오기는 했다. 하지만 매주 집 대출금으로만 577불을 내고 있으니 그 외의 생활비는 모두 모아 둔 돈에서 꺼내 써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큰 지출 없이(앞의 글에서 언급한 중고차는 제외) 기본적으로 먹는 것과 유틸리티 비용에만 돈을 썼지만 아무리 못해도 매주 700 ~ 800불은 필요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노조에서는 노조원들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경우 회사로 돌아가지 말고 노조에 Hardship Fund(고난 기금)를 신청하라고 독려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고난 기금(Hardship Fund)'은 꼭 파업에 참가 중인 노조원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노조원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경우 신청할 수 있는데, 보통 파업이 길어지면 파업 중인 노조원들만 대상으로 하는 고난 기금이 별도로 조성된다고 한다. 노조에서 파업 전부터 이런 제도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것을 신청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점점 말라 가는 곳간을 보면서 일단 무엇이라도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은 말라가는데 하필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급하게 고쳐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아이들을 데리고 슈퍼로 걸어가 밥을 먹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그저 즐겁다.



이 고난 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신청서에는 내가 지금 경제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다른 소득은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얼마의 돈을 받고 싶은지 적어야 했다. 앞서 말했듯 이 제도는 꼭 파업 중인 노조원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니 기금을 받으려는 이유를 자세히 적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파업 중인 노조원들에게는 조금 더 관대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대략,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
현재 파업 수당 515불 이외에는 다른 수입이 없고 매주 대출금을 577불씩 갚고 있어서 추가적인 생활비(일주일에 700~800불)는 모아 둔 돈에서 꺼내 쓰고 있는 형편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와이프가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몇 주 후부터는 수입이 있을 예정임.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난 기금에서 1,000불을 받고자 신청함

이라고 적어서 노조에 고난 기금 신청서를 보냈다.


사실 내가 처음 신청서를 보낸 것은 9월 초로 다른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고난 기금을 신청하기 전이었다. 나중에는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모두가 경제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심사가 매우 간단하고 빨라졌지만 처음에는 심사에 약간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신청서를 제출하자 노조에서 현재까지 내가 했던 파업 활동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켓팅에 세 번 참여했고 온라인 활동을 해서 다행히 할 말이라도 있었다.


서류 검토 후 승인이 되면 수표를 보내 준다고 했는데 혹시 거부가 되면 어떨까 걱정이 되었다. 별다른 회신이 없자 지원 금액을 조금 더 적게 쓸 걸 그랬나 싶었는데 어느 날 우체통을 열어보니 노조에서 보낸 수표가 들어있었다.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수표였다.


노조에서 보내 준 고난 기금 수표. 내가 9번째로 수표를 받은 사람인가 보다. 어쨌든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무런 진전 없이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물론 회사는 한결같이 노조와 협상에 임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듯했다. 솔직히 회사가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때부터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회사로 돌아간 사람. 또 다른 하나는 아마존 배달이나 우버 이츠 같은 것을 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


아, 나는 세 번째 부류로 미친 듯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어쨌든 노조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붙잡아야 했기 때문에 파업 수당을 늘리고, 고난 기금 신청을 아주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나도 이 정도 되니 정말 쪼들리기 시작했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다시 한번 고난 기금을 신청하였다. 이번에는 나도 진짜 힘드니 에라 모르겠다 2,000불을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보니, 어라 정말 2,000불을 줬네...


후에 할 이야기지만 이렇게 힘들었던 상황에서 10월 초에 매우 갑작스럽게 파업이 마무리가 된다. 파업은 끝났지만 노조에는 파업 기간 중 각지에서 받은 후원금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1,000불을 지급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다시 임금을 받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파업 급여도 지급해 주었다. 또 내가 속해있던 노조 지부(오타와-킹스턴)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 주어서 고맙다며 상품권을 600불이나 보내주었다.


나는 항상 노조라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파업을 한다고 자기네 직원들을 말라 죽이려는 회사보다 그래도 정말 어려울 때 한 푼이라도 보내 준 노조가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회사에 돌아가서 슈퍼바이저가 나에게 3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해서 어려웠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물론 9월 중순부터 2~3주 정도는 정말 힘들긴 했지만 계산해보니 결국 내가 노조에서 받은 돈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세후)의 70~80% 정도나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파업으로 내 연봉이 1/4은 줄어들 테니 올해 내가 낼 세금도 많이 줄 것이다(노조에서 받은 돈은 비과세). 파업에 참여하나, 배신하고 일을 하나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긴 하지만 굳이 슈퍼바이저에게 나 노조에서 돈 많이 받았어요라고 말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어려웠다고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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