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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an 04. 2023

고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

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8

그동안 피케팅도 해보고, 배신자(Scab)들이 일을 하는 곳에 지켜 서서 그들이 하는 일을 막아보기도 해 보고, 정치인들에게 협조를 구해보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시위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놀랍도록 효과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2022년) 7월에 시작된 파업이 크리스마스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소문이 틀린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가 이렇게까지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이야 말라죽든지 말든지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일을 했던 배신자(Scab)들 때문이었다. 


노조도 처음에는 사측이 이렇게까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인 줄 몰랐을 것이다. 사실 노조에서도 파업이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 전혀 진전이 없자 회사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오퍼를 기본으로 그것에 대한 카운터 오퍼를 제시하긴 하였다. 노조가 처음 요구했던 조건보다는 훨씬 물러섰기 때문에 이 정도 했으면 사측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일단 만나서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측은 철벽 그 자체였다. 철벽이라는 표현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오퍼에서 한 발도 물러 설 생각이 없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계속 길거리에 나가있으라는 식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성과 없이 두 달이 흘러가자 파업에 참여 한 사람들은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캐나다의 직장인들 중에서 저축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보지 못했을 정도로 여기 사람들은 당장 월급이 끊기면 모기지, 유틸리티, 카드값을 갚을 길이 없어진다(이런 생활 형태를 가리켜 Living Paycheque to Paycheque라는 표현을 사용). 일주일에 300~500불 정도 들어오는 파업 수당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화가 날만 했다. 


그 사이 알게 모르게 회사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았고, 주간 회의에서 노조의 협상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보니 이러다가 곧 내분이 일어나서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조에서도 이래서는 돌파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한번 파업 전략을 바꾸기로 하였다. 



노조가 선택한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회사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악의적(Unfair Labour Practice & Bad Faith)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다고 온타리오 노동 위원회(Ontario Labour Relation Board)에 정식으로 불만을 제출한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그동안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파업 직전에 통보한 오퍼가 마지막이라며,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다시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그러면서 언론을 통해서 자신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오퍼를 했고, 노조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회사가 통보한 오퍼가 정말 마지막이고 노조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회사는 법적인 절차에 따라 노조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노동 위원회에 이것이 '최종 오퍼(Final Offer)'라고 통보를 한 후 노조원들에게 찬반 투표를 진행하게 했어야 했다. 만약 자신들의 오퍼가 노조원들에게 거부를 당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런 정식적인 절차는 밟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물론 이것 말고도 문제가 많았다) 사측은 파업이 시작된 이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계속 협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에서 불만을 제출한 것이다. 


노조의 두 번째 전략은 바로 중재(Arbitration)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온타리오에서는 첫 번째 단체협상에 한해 협상이 고착 상태에 빠지게 되면 어느 한쪽에서 노동 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제삼자가 양측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을 하게 되는데 어떠한 결정이 나든지 양측은 반드시 이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내가 노동 전문가는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초 단체협상이 아닌 경우 중재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중재에 다다르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중재에 가기 쉬운 첫 번째 단체협상이었기 때문에 노조원들 사이에서도 어서 중재를 요청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조에서는 이때까지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다. 


노조에 따르면 보수적인 성향의 온타리오 정부가 최근 법을 개정하여 첫 번째 단체협상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쉽게 중재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양측이 모두 중재에 들어가는 것에 동의를 해야 하는데 사측에서 동의를 할리가 없기 때문에 이 옵션은 조금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을 해왔다. 사측에서 중재를 꺼리는 이유는 중재에 들어갈 경우 회사가 노조와 원만한 협상에 실패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게 되고, 일반적으로 양측 요구의 중간 정도에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사측에서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재(Arbitraton)가 사측에 불리한 것은 메이저리그의 연봉조정신청 사례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풀타임 메이저리거 4~6년 차 선수들의 경우 기한 내 연봉조정 합의에 실패하면 중재까지 갈 수 있다. 그런데 선수 측에서 중재를 요청하더라도 중재 직전에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중재에서 양측 절반 정도에서 결정이 되고는 한다. 어느 경우라도 구단측에서 처음 제시한 금액보다는 더 많은 금액으로 결론이 나고는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 되겠는지 노조에서 결국 중재 요청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 말과는 달리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아도 중재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이때까지 한 말은 뭔가 싶었지만, 뭐 노조에서도 마지막까지 법과 유사한 사례를 다양하게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때가 2022년 9월 중순의 일로 파업이 시작된 지 정확히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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