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내 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파업이 한창이었다. 워낙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기에 참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열심히 글을 썼지만 어느 순간 힘이 빠지고 말았다. 앞의 글들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파업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에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글을 쓰다 보면 그때 벌어졌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지고는 했다. 물론 쓰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쓴다고 볼 사람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어쨌든 마무리는 하고 싶었다.
이직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사실 지금 회사의 엔지니어 자리에도 지원을 했었다. 내부 지원은 조금 수월한 편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엔지니어로 자리를 옮기면 이것저것 배우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회사가 싫어도 눈 딱 감고 2~3년 참으며 일을 배운 후 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내부 지원이었지만 두 차례에 걸쳐 면접을 보았는데 면접 후 한 달 반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소식이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에 두 번 토론토로 출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지원했을 때는 혹시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에 가는 것이라면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면접 중 회사 방침이 일주일에 두 번은 사무실로 나와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약간 힘들긴 하겠지만 어차피 2~3년 동안이니 뭐 두 번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침 그 무렵 본사(토론토)에서 1박 2일로 세미나가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호텔에서 묵었겠지만 회사 사람들(대부분 Scab)도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일주일에 두 번 토론토로 출퇴근하는 것을 연습한다는 생각에 이틀 동안 집에서 토론토를 왕복해 보았다. 바로 결론이 나왔다.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하도 연락이 없어서 거의 잊고 있었는데 엊그제 슈퍼바이저에게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너를 엔지니어로 채용할 생각이 있는데 만약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정식 오퍼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연봉은 지금 보다 몇 천 불 오르지만(정확히도 아니라 few thousands dollars라고 했다) 회사 차량과 재택근무 비용(2,000불)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었던 대로 일주일에 두 번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어차피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보니 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지? 채용할 생각이 있으면 정식으로 오퍼를 보내던가 아니면 메일로 자세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처리 방식일 것이다. 말로 몇 천 불 오른다고 했다가 나중에 겨우 2000~3000불 올려주는 것이라면? 그리고 휴가나 다른 복지들은 동일한 조건인 것인지 아닌지? 나 혼자서 그러려니 생각했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은 회사가 바로 이 회사이다.
자기네 직원과 대화를 하는 방식이 노조와 단체협상을 했던 방식과 똑같았다. 너네 생각이야 어떻든 우리는 이것밖에 줄 수 없으니 받든가 말든가. 이 회사는 도대체 자신들의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슈퍼바이저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런 것을 말로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것이다. 채용하고 싶으면 오퍼를 보내던가 메일로 내용을 적어서 보내라. 그걸 보고 가든지 말든지 결정하겠다.
회사로 복귀한 이후 중간중간 정이 떨어지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바쁘지 않아서 그냥 좋은 기회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며 조용히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2023년) 들어 밀렸던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매우 바빠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특히 이럴 때 그만두어야 회사에 제대로 엿을 먹이는 것일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회사가 직원을 존중하지 않으면 직원이 회사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가 지난 15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다.
사실 내가 바랐던 것은 연봉 인상도 아니고 휴가나 복지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바랐던 것은 최소한의 존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