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10
어쩔 수 없이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내가 했던 과거의 선택들이 후회가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곳, 온타리오 킹스턴은 일자리가 별로 없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회사를 옮길 마음이 있었다면 기회가 생겼을 때 옮겨야 했다. 몇 년 전에 나에게 딱 맞는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당시 그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힘들어했다. 킹스턴에는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의 사람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드니 몇 달 만에 다른 주에 있던 사람을 겨우 채용할 수 있었다. 공고가 났을 때 나도 지원해 보면 어떨까 아주 잠깐 생각했는데 이 회사에서 너무 편하게 일하는 것에 젖어 떠날 생각을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떠났어야 했다.
또 다른 후회는 캐나다에서 처음부터 엔지니어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분야는 약간 독특해서 엔지니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다. 한국에서야 공대 출신이면 다 그냥 엔지니어고 검사원이지만 여기에서는 검사원(Inspector)과 엔지니어는 엄연히 다르다. 월급도 그렇고 결정할 수 있는 일도 그렇고 올라갈 수 있는 위치도 다르다. 그나마 예전에 일했던 사스카추완에서는 지금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 정도는 엔지니어의 일을 했기 때문에 크게 나쁘거나 불리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회사 엔지니어와 검사원의 일이 완전히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엔지니어는 엔지니어이고 검사원은 검사원이다.
만약 두 자리가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검사원이 아닌 엔지니어(Reliability Engineer, Integrity Engineer 등) 자리를 찾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그런 차이를 알지도 못했고 그저 어디든 취업을 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으니 다 지나고 하는 이야기이긴 하다. 다만 한 2년 전에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이직을 추진하지 않았던 것은 후회가 된다.
뭐 불러주는 곳이 없으니 일단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2022년 10월 18일 3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를 하였다.
회사로 복귀하면 일이 쌓여있을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 일이 없었다. 파업 기간 동안 중요하거나 긴급한 검사들만 해왔기 때문에 한동안 안정화가 될 때까지 계속 그러려는 모양이었다. 그사이 다시 일을 할 준비를 하면서 파업 기간 중 기한이 지난 안전 교육들을 들었다. 그리고 슈퍼바이저로부터 3개월 만에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사람은 파업과 노조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너도 힘들고 남아있는 사람도 힘들었는데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 잘해보자는 식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 해보았자 시간만 아까워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는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니까.
며칠이 지나고 이제 슬슬 일을 해야 했는데 슈퍼바이저가 다른 사람이 했던 일 하나를 마무리해야 된다고 연락이 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배신자(Scab)이고 '했던 일'이라면 파업 기간 동안 했던 일인데 나보고 그것을 마무리하라니. 정말 이 사람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나는 그런 일은 안 한다고 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혼자서 열을 내고 있는 사이 이번에는 갑자기 토론토에서 팀 빌딩(Team Building)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알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날이 되면 병가를 내고 가지 않을 생각이니. 결국 이 행사는 한 달 뒤 정도로 미루어졌지만 물론 아프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슈퍼바이저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끝까지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이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팀원 13명 중 3명만 끝까지 파업에 참여했고 나머지는 처음부터 일을 했거나 중간에 회사로 돌아간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슈퍼바이저가 처음 전화했을 때 했던 말(예를 들어 회사로 돌아와도 된다는 연락은 못 받았냐)이나 팀 빌딩 행사를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만 이상해지는 아주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곧 떠날 수 있을지 알았다. 이미 몇 개의 면접을 본 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앞으로도 몇 군데 면접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내가 했던 일과 관련은 있지만 내 경력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자리들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나 보다. 11월 중순이 지나면서 나는 이것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사이 놀랍게도 회사는 계속해서 노조를 붙잡고 늘어졌다. 노조가 협상 때 지키기로 한 사항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복귀 장려금(그래봤자 300불)과 임금 인상분(그래봤자 2.5%)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더 놀랍게도 노조가 지키지 않은 사항은 트위터에 파업 관련된 내용을 다 지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내용으로 노조를 압박한다거나, 회사 IT 시스템에서 파업 기간 중에 배신자가 일을 한 기록을 발견한다던가, 회사나 고객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은 나에게 마무리해야 된다고 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어서 떠나는 것이 맞겠지만 연말이라 더 이상 채용 공고도 없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Stuck in limbo(지옥의 변방에 빠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팀 행사건, 회사에서 CEO가 만든 자리건 항상 아프다는 핑계로 참석을 하지 않았으나 (2022년) 12월 초에 모든 직원이 모여야 하는 자리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병가도 다 쓰고 행사가 이틀이나 해서 빠지면 업무 시간 채우기가 어려웠음). 나는 그냥 구석에 앉아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속은 어떤지 몰라도 겉은 즐거워 보였다. 참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이 정말 괜찮은 걸까?
여기서 가장 기쁘지 않은 사람은 분명 나인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