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율 Dec 14. 2023

모닝커피는 못참지


 

 한 달 만에 또 왔다. 날은 더 포근해졌고, 녹음은 더 짙어졌다.

전보다는 조금 더 익숙, 능숙, 성숙 쓰리숙해진 우리니깐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출발했다.

한 달 전에 왔을 때랑 도착시간이 비슷한데도 해가 길어져서 조금 더 시간을 번 듯한 기분이 든다.


양 손과 수레로 짐을 두어번 이동하고, 놀이가방,의자 정도는 아이들 손에 쥐어준다.

적당한 위치를 잡고 방수포(그라운드시트)를 깐다. 표식을 해두었더니 텐트의 입구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

한 사람이 폴대를 쭉 넣으면 대각선 방향에서 한 사람이 쭉 빼내고 고정을 위한 장치들을 안착시킨다. 성인 둘의 호흡이 제법 잘 맞다. 남편이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는 동안 한쪽에서 나는 허물 벗어놓은 듯한 갖가지 집기류의 파우치들을 한데 모아놓는다. 전기장판과 이불을 깔아 두고(베개가 있으면 좋겠어) 새로 산 조명등지 달면 기본적인 정리는 된 상태이다.



'날도 따뜻해졌으니 계곡에 발 담그러 가볼까?'

사이트 바로 앞이 계곡이라서 돌계단만 내려가면 된다. 물속에 보이는 것은 뜻밖에도 무수히 많은 검은색의 올챙이들.....


세 남자 : "우와~ 올챙이 많다"

나 : "으악~ 징그러워"


같은 것을 보아도 반응이 이렇게 다르다. 귀여운 것보단 징그럽게 느끼는 나만 빼고 삼부자는 다소 흥분된 상태다. 빈 통을 찾기 시작하고, 하나 둘 손에 잡히는 대로 넣어본다. 물통 한가득을 채우고 다시 놓아주는 걸 반복하며 올챙이 하나로 시간을 한참 보냈다.





 캠핑도 여느 숙박업소와 비슷하게 입, 퇴실시간에 맞춰야 하므로 1박을 예약하고 왔을 경우에는 그날 저녁 한 끼와 다음날 아침 또는 아점 한 끼로 마무리를 하고 부지런히 짐을 싸야만 한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저녁 한 끼는 고기고, 다음 날은 라면이다. 두 번의 캠핑으로 아직까지 식단을 개선해 볼 생각은 못해봤다. '밖에선 고기지!'라는 생각에 장 볼 때도 우선 고기부터 넣고 본다.

조금 더 진화된 것이 있다면 파를 좀 썰어오고 고기에 곁들일 새송이 버섯, 매실 장아찌, 고추 장아찌, 김치를 챙겼다는 점이다. 온통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배경. 운치있는 나무 테이블에서의 식사 시간은 말로 표현이 부족하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음식이 맛있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살도 더 많이 찐다는 점.




        나뒹굴던 장작의 변경 전과 정갈해진 변경 후 / 브라운스피커 소환                                        



 저녁식사가 끝나면 장작도 정갈하게 놓아보고, 집에서 먼지를 한껏 뒤집어썼던 브라운스피커도 소환해 본다. 역시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지. [별이 진다네]부터 [캔디], [버터]까지 불멍과 시작된 아이들의 댄스타임을 끝으로 날이 급격히 어두워져 간다. 아이들은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고 텐트 안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 보면서 시간 보낸다.  

남편과 나는 집 짓느랴, 밥 짓느랴 정신없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제서야 숨을 좀 돌린다. 장작의 마지막 불씨가 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평소보다 화를 덜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사람은 바깥공기를 마셔줘야 하는건가? 자연 앞에서 제법 너그러워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9시가 되기도 전에 뜨뜻한 전기장판 위에 넷이 둘러앉아서 매너타임을 핑계삼아 조용한 게임을 제안해 본다. 일명 [전기게임]과 [007 빵], [제로게임]. 이 게임을 알 리 없는 두 명의 알파세대들에게 전수해주고 함께 해보니 세대를 넘어 좀 더 친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캠핑와서 굳이 단점을 찾자면, 새벽에 화장실가는게 귀찮다는 점이다. 어둡고 추운데 가긴 가야해서 간밤에 한차례 외출을 한 후 다시 잠을 청한다. 자다가 아이들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거나 뒤척뒤척 자다깨다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날이 밝아오면 생각보다 피로감이 오래가지 않는다.

제일 먼저 새소리에 잠을 깨게 되고, 텐트 안 밖에 송글송글 맺힌 이슬도 살짝 털어준다. 그리고 이번엔 꼭 해보고 싶었던 커피타임을 갖기로 한다.

물을 끓이는 동안 미리 준비해 놓은 믹스커피 두 봉지를 종이컵에 탈탈 털어넣는다.

휘휘저어서 상쾌한 바람과 함께 한모금하니 행복이 멀리 있지 않구나. 이번 캠핑은 이걸로 충분해


모.닝.커.피는 못 참지






p.s

 지난 번에 국자와 그릇을 대신해 아주 요긴하게 썼던 종이컵을 보고 생각했다.

'캠핑장에서 간편함을 쫓다보면 일회용품 소비가 꽤 많아지겠구나'라고 - 다음엔 꼭 컵을 준비해오리라 다짐해본다. 오래오래 이 풍경을 담고싶고, 이 안에서 느끼고 싶으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이전 01화 국자를 빼고 온 첫 캠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