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냈음"을 축하해야 하는 곳

- 도대체 난 왜 여길 선택했을까? -

by 예민아씨

가난한 환경일수록 합리적인 결정에서 멀어져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영양섭취나 스트레스 취약함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한 뇌의 인지 능력 때문인데, 부자는 합리적 선택으로 더 부자가, 가난한 사람은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더 가난해지는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와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영국 워릭대 경제학과가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공동 발표한 논문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뉴저지주 쇼핑몰에 쇼핑하러 온 4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연 소득 7만 달러 이상인 사람과 2만 달러 이하인 사람으로 나눠 경제 의사 결정에 대한 간단한 논리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소득이 높은 그룹의 문제 해결력이 소득이 낮은 그룹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았다.

이유는 가난한 사람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빚을 갚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 등에 압박을 받으면서 뇌가 과부하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생산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렇다. 당시 나는 이전 회사를 그만둔 지 7개월에 접어들 때였고, 1년 후 돌아오는 전세 만기에 잡음 없이 다시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1년간 소득을 증빙해 줄 회사가 필요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1년 후 대출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를_과장 2년 차에서 대리 3년 차로의 직급 강등과 전 직장에서 퇴사했을 때와 동일한_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분명 매일매일 이상하다고 느끼는 이 회사를 1년은 다녀야겠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다.

(참고 : 전 직장과 이곳의 매출 규모는 계약한 회사 단위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회사 규모 차이에서 내 경력과 연봉을 낮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 이상한 계약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풀어내겠다)


버팀에 대한 내 의지와 불확신은 1주년 파티 계획을 짜던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전 회사에서 인연을 맺었고, 나보다 두 달 먼저 이곳의 다른 계열사로 입사한 (이제는 세상 소중한 인연이 되어버린) 내 친구와 점심을 함께 하며 신세 한탄하던 어느 날였다.

(친구) "언니, 여기 다닌 지 얼마나 됐지?"

(나) "2달?"

(친구) "2달밖에 안 됐어? 훨씬 더 오래된 것 같은데! 언니 시간만 느리게 가나 봐ㅠㅠ 우리 다닌 지 1주년 되는 날 축하 파티하자. 진짜 그때까지만 버텨보자"

(나) "그래 진짜 파티하자. 맛난 것도 먹고 기특하다고 토닥토닥해주자. 근데 그때 우리가 여기 있을까?..."


그러던 내가 어느덧 1주년, 2주년을 넘겨 이곳에서 816일째 보내고 있다. (내 친구도 함께)


이런 조 단위 매출을 내는 큰 회사에 어떻게 '이런' 인간 군상들이 모여있는지 매일 이곳의 문화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 지쳐가던 날들이 이어졌고, 결국 나는 올해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여기서 경험한 '입이 떡 벌어지고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는' 일들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하려 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군상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힘들다는 내게 '구체적으로 뭐가 힘들어?', '다 그러고 살아', '버티다 보면 괜찮아져' 등등 얼마나 이곳이 심각한지 이해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나름의 대답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이상한',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일과 사람이 '정상'과 '대세'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내가 비정상인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를 늘 고민하던 나의 "지극히" "정상"였던 동료들에게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공감의 글이 되길 바라며.


나는 퇴사 전까지 이곳의 기록을 반드시 마쳐야겠다.


2021년 2월 18일. 이곳에서 816일을 보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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