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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심리치유책방 Apr 27. 2024

[몸이라는 감옥] 갇힌 자의 외로움

헝거 -록산 게이

“ 설마요. 저 몸무게가 그때보다 7킬로 늘었어요.”     

몇 년 만에 지인 희수를 만났다.

똑 단발에 고운 눈빛을 한 희수에게

눈빛이 여전해서 “ 여전하네.”라는 말에 예상치 못한 몸에 대한 답변이 돌아왔다.

업무에 인간관계에 지쳐 집에 오면 배달음식을 먹는데  먹어도 먹어도 헛헛하다고 한다.


“ 먹으면 안 되는데 하며 배민앱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니깐요.” 야근으로 집에 가면 지쳐서 좋아하던 운동도 하기 싫고 출근 전까지 오롯이 쉬고 싶은데 자꾸 음식이 당긴다며 살찐 자신을 속상해한다.      

"거울도 보기 싫고 우울해요."

  

록산 게이의 자전적 이야기인 ‘헝거’(록산 게이. 2018)에서 12살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록산이 고통을 잊기 위해 도피처로 삼은 것은 가장 손쉬운 먹는 것이었다. 먹으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어린 나이에도 뚱뚱한 여자는 남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욕망의 대상화가 되는 자신이 싫어 자아를 스스로 지우고 뚱뚱한 자아가 되기로 결심한다. 분노스럽게도 가해자 남학생들이 도리어 학교에 록산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내며 2차 가해를 하고 무자비한 폭력에 속수무책의 어린 소녀는 살기 위해 고통과 수치심을 먹는 것으로 위로하다 '다이어트'라는 감옥에 몸을 가두게 된다.  

  

 몸은 우리(동물을 가두는 우리를 말한다.)다. 내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다. 지금도 여기서 어떻게든 탈출 방법을 찾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이 안에서 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헝거 38쪽 인용     


어른으로 성장한 뒤 200킬로 이상의 거구가 된 록산은 다시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3차 가해를 입게 된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이 찐 아픈 이유들은 묻지 않고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과 혐오 시선을 받으며 점점 구석으로 몰리고 편견의 감옥에 갇혀버리는 일상의 감옥에 갇힌다.


 나도 부모의 불화로 어린 시절 큰 상처를 입은 후 먹는 것 말고는 내면의 큰 구멍을 메울 수가 없었기에 먹는 것에 집착했고 순식간에 30킬로가 쪘던 기억이 있다.  20대 시절 친척 한분이 “뚱뚱해서 시집가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 잘못한 그분에게 화를 내는 대신 단 것을 먹으며 수치스러워 울었던 날 외롭고 서러웠다. 그 서러움을 알기에 절대 몸에 대한 말을 상대에게 하지 않는 것이 오랜 다짐이다.


사람은 억울함, 서러움, 외로움등을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면 다양한 육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즉 억울하고 참담하면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고통의 흔적이 남는다. 특히 착해서 남을 먼저 생각고 싫은 소리를 입에 올리지 않으며 부탁을 못해 힘겨운 사람들은 자신에 몸에 흔적을 남겨 저항 아닌 저항을 한다. 흔적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감옥을 다녀왔다. 정약용은 조선 시대 정치적 폭력에 유배를, 유시민 작가는 현대 시대 정치적 폭력에 대항하며 감옥에 갇혔다. 록산 게이는 평등의 시대에 차별적이고 비인간적 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다. 같은 외부 억압과 폭력인데도 외로움과 고통의 결이 비슷한 듯 다르다. 물리적 감옥이든 정신적 감옥이든 갇혀 본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상당하고 긴 기간 참담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다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스스로 갇혔지만 감옥이 낭만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감옥에서 정약용은 200권 이상의 책을 썼고 유시민 작가는 항소이유서를 썼다. 록산 게이도 자신의 고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은 물리적 혹은 정신적 감옥에서 자랑하려 글을 쓰지 않았다. 그저 애처롭게 때론 담담하게 그리고 외롭게 , 읽고 기록하고 스스로를 견뎌낸다. 섣불리 감옥에서 탈옥하였고 나는 멋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나 훌륭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재 나는 ’생존자‘보다는 ’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 승리를 쟁취한 척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채로 여기까지 걸어왔고 그 일을 잊지 않고 나아가거나 내게 흉터가 남지 않은 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내 몸에 관한 고백이다. “ - 헝거 4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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