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 신념 흘려보내기
"이상하죠? 요즘 우울한 게 싫지 않아요. 우울할 때 글이 잘 써져요. 그전엔 우울한 게 너무 싫었거든요."
나는 그녀와의 상담을 종결했다. 상담을 종결하는 때가 언제일지 상담가마다 다른데 나는 불편한 감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혼자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내담자 말에서 '전환'을 잘 관찰하고 기록하고 종결을 기쁜 마음으로 알린다. 전환을 스스로 해낸 사람은 어려움이 닥쳐도 금방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전환'은 시작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생의 전환기'라 불리는 중년은 시작이다. 몸도 마음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변화는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변화는 곤혹스럽다. 젊었을 때를 생각해서 놀거나 운동하면 금방 탈이 난다. 금방 탈이 나는 걸 아니깐 쉽게 시작도 못한다. 그런데 생의 전환기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은 변화를 대비할 여력이 없는 것 같은데 노년은 다가와 있다.
중년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기 시작해야 지혜롭게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에릭슨(1968)은 이 전환기를 살아낼 감정으로 '생성감'을 들었다.
생성감이란 결과에 따른 성취감, 만족감 같은 것이다. 이 시기에는 젊음은 끝났으나 얻어걸린 몇 가지가 괜찮았다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즉 '그래, 뭐 나름 잘 살았지.'가 마음에 자리 잡아야 우울과 침체를 막는다. 비슷한 마음으로는 '이 정도면 애들 잘 키웠다, 나름 성공적인 카레 어지, 이 정도 벌었으면 최선이네'가 있다.
반면 중년기에 생성감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뭐 하고 살았나'가 머리를 떠돈다. 뭐 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은 단단히 고정되고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는 전환기로 접어들었는데 마음은 고정되고 점점 본인이 한심해진다. 스스로가 한심해지면 침체된다. 감정이 침체되면 곧장 우울감이 생긴다.
의기소침을 막아 괜찮은 중년기를 보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마음 연습 첫 번째는 비합리적 신념을'전환하기'이다.
최근 읽은 책, 언니네 미술관(이진민. 2024. 한겨레)에서는 마음 전환을 위한 좋은 방법과 생각 연습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의 힘이 있음을 알게 되고 생각을 전복시키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이진민 작가는 기쁨이라고 다 긍정적이지 않으며 슬픔이 오히려 고통의 존재를 배려하는 무해하고 힘이 센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 서투룸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라고 다르게 접근하는 법을 알려준다.
특히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김홍도는 매일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배는 강물이 마른 상태에서는 띄우기 어렵지만 강물이 불어난 상태에서는 배를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즉 하루하루 읽고 연습하면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책 내용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마음 연습도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마음도 연습을 계속하면 긍정적인 습관이 응축되고 점점 비합리적인 생각은 전환을 하기 시작한다. 한번 전환을 시작한 생각과 마음은 배가 유유히 흘러가듯 그렇게 흘러간다.
중년기에 비합리적인 생각을 변화가 두려워 붙잡고 있으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부풀어 올라 좋은 마음을 잠식한다. 부정적인 마음에 압도되면 불안이 커지고 불안이 커지면 몸이 아프다. 중년기에 몸이 아프면 결국 노년을 대비할 수 없다. 생각은 영원하지 않다. 붙잡지 않고 가만히 두는 마음 연습이 곧 전환하기다. 우리는 생의 전환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