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뇌 - 권택영
나이가 들수록 삶은 버겁다. 주소 하나 들고 골목골목을 찾는 느낌이랄까. 직장 하나 겨우 잡고 배운 방법 몇 개 가지고 마음 구멍을 메우고 있자니 구멍은 더 커져 아쉬움과 허무함이 줄줄 흐른다.
고단한 마음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자니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받은 고지서가 가득이고 월급은 계좌를 잠시 스치고 가는 숫자일 따름이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힘든 마음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다. 멍청해지는 나 자신을 들키기가 싫다. 도박을 하자니 돈이 없고 연애를 하자니 불륜이고 덕질을 하자니 열정이 바닥이다. 편의점에 가서 손쉽게 몇 천 원에 구해진다. 다행히 술은 불법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개인적 자아보다 사회적 자아로 살아야 하는 일이 많다. 사회적 자아는 감정은 최대한 억제하고 욕망은 조절하며 이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 자아는 성취와 경쟁, 목표에 익숙하고 성과가 나온다. 전력을 다하는 구조다. 전력을 다해 이성적으로 살다 보면 감정이나 욕망은 자연스럽게 억압된다.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가 계속 활성화되고 뇌의 신경망이 그렇게 길을 낸다. 이제 뇌는 모호하고 불편한 감정을 만나면 당황하고 불안해진다. 방법을 모르니까.
'내가 뭘 좋아했지.'
'난 왜 살지.'
'꿈이 있었나.'
'재미가 없네.'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면 우뇌는 작동을 하지 않는 중이다. 논리에 익숙해져 감정을 잃었다. 동물에 비해 인간은 어린 시절이 길다. 동물은 생존을 위한 몸의 언어를 배우는 동안 인간은 양육이 되며 뇌를 발달시켜 언어를 배운다. 뇌는 우뇌부터 먼저 발달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감정, 재미있는 놀이, 호기심, 상상력, 창의력이 먼저 발달한다. 우뇌가 먼저 길을 만들고 좌뇌가 점점 발달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뇌와 좌뇌가 협업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성과 감정, 욕망이 잘 균형을 이루어야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진다.
나이가 들면서 좌뇌만 발달하면 허무해지고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 불안하니 뭐든 중독이 되어야 마음이 편한다. 그런데 중독이 되는 동안 우뇌는 점점 더 약해진다. 그래서 술이 깨면 더 힘들다. 발달한 좌뇌는 중독된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게 된다. 한심하고 못마땅한 자기 검열이 무의식에 쌓여 자기를 공격하면 결국 우울증이 된다.
중년 불안을 막으려면 우뇌를 발달시켜 즉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균형 잡힌 뇌'를 쓴 권택영 박사에 의하면 철학과 문학은 우뇌와 좌뇌가 균형을 유지한 채 자기 힘으로 내용을 파악하고 판단에 이르게 하기에 불안을 잊게 한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보낸 하루에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고 서사를 만들어가는 일기를 쓰면 불안이 많이 약해진다. 대신 반성을 하기보다는 재미있는 일 위주로 쓰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 좌뇌의 활동을 일기를 쓰는 동안은 덜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일에 대한 일은 직장에서만 하며 일기를 쓰는 동안은 내 욕망과 감정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노력을 하면 술이나 다른 것에 중독되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작은 일에 감동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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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산다. 진화는 대가를 요구한다. 동물은 시간 개념이 없어 후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