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중년 마음력 기르기 4[일회용 삶 씻어 쓰기]

스토너 - 존 윌리엄스

by off

최근 김영하 작가 산문을 읽다가 목에 걸린 가시 같이 마음에 걸려든 단어가 있다. '일회용 인생'

눈물 쏙 날만큼 컥컥거려도 빼내지지 않는 생선 가시처럼 오래 꾸물거리며 생각했다. 일회용이라... 우리 삶은 뭘 가졌든 뭘 입었든 누구와 살든 어디에 있든 공평하게 한 번이다. 얄짤없이 한 번이라 더 아쉽고 후회도 쌓인다. 후회도 일회면 좋겠지만 후회는 다회용이다. 불공평하다. 단어 하나에 기억은 고구마 줄기처럼 술술 딸려 올라온다. 일회용? 일회용 용기가 떠오른다. 도자기에 비해 일회용들은 다소 경박하고 가치 없지 않던가. 일회용으로 인생을 보니 분리수거통에 가차 없이 버려지는 상상을 한다. 삶이 갑자기 실패로 후줄근해진다. 나이는 들었는데 무엇을 이루었지? 가차 없이 생각들이 휘몰아친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서 주인공 스토너는 정말 착한 남자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부모를 원망하지 않으며 부인이 빌런이지만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오직 문학에 대한 열정적 몰입으로 긴 삶을 살아낸다. 1차 대전으로 친한 친구를 잃고 2차 대전으로 사위를 잃는다. 결혼 생활은 실패했고 사랑하는 딸은 히스테릭한 아내 때문에 결국 알코올중독이 된다. 교수로서의 지위도 스토너를 싫어하는 로맥스라는 교수에 의해 찌그러지고 직업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지만 불륜이라는 상황에 몰리며 사랑도 끝내 상실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바랬다. 분연히 스토너가 빌런들에게 한방을 크게 먹이기를... 그러나 큰 반전은 없다. 스토너는 그냥 우리다. 어정쩡하게 상황에 휩쓸리고 성실성을 꿈꾸지만 적당히 타협했다.(스토너 388쪽) 꿈들은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찌그러졌으며 지혜를 바랐지만 무지한 하루만이 남았다. 겨우 근 30년 만에 빌런 로맥스의 계락에 대해 '개자식'정도로 응수한다. 그렇게 오래 당하고 겨우 그 한마디라니요. 스토너 양반. 허허


소설 말미에 결국 울 수밖에 없었다. 암으로 죽어가며 스토너는 회한 속에서 마지막 삶을 오롯이 혼자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끝없이 되뇐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러 온 딸, 곁은 지킨 친구, 여전히 괴상한 아내를 바라보며 되뇐다. "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마지막 질문에 최대한 주변을 살피는 스토너의 태도에 눈물이 쏟아졌다. 스토너는 마지막 순간에 열정과 사랑을 다해 쓴 책을 펼친다. 그리고 삶의 정지를 인지하고 침묵한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392쪽)


스토너의 일회성 인생을 플라스틱에서 도자기로 만든 것은 자신이 좋아한 일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했다.


중년이 되어 일회성 삶을 되짚어 바라본다. 나 역시 스토너처럼 삶이 실패하였고 시시하였다. 또한 스토너처럼 초연하고 무심한 척 하지만 여전히 열정 한 조각을 마음에는 품고 있다. 사실 억지로 중요한 것은 억지로 우겨보는 일인데, 일회용도 곰곰 관찰하면 다회용이 되는 것들이 있다. 플라스틱 숟가락과 포크다. 나무 젓가락은 씻어서 쓰면 좀 그렇지만 일회용 숟가락은 씻으면 다회용으로 변모한다. 그러다 보면 환경 보호도 되고 그렇겠지? 인생도 일회용이지만 억지로 씻어서 쓰면 후회의 숫자는 줄어든다.

요즘 자주 이렇게 나에게 묻는다.

" 그때 오죽하면 그랬겠냐?"

멍청한 선택이나 엄청난 실수를 떠올리면 너무 괴로울 때 계속 스토너처럼 되뇐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실수가 생각나 수치스럽고 불안할 때 자주 생각한다.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 정도였으면, 네가 이성이 마비될 정도였으면 진짜 그때 힘들었네."

즉 왜 그랬어 가 아닌 그럴 수밖에 없었네로 씻어내려고 노력한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쏟아져내리는 폭우 같은 마음이 자주 오는 것이 중년이다. 폭우는 피하고 볼일 아닐까. 옷깃을 세우고 최대한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 처마를 찾듯이 되뇐다.

"오죽했으면, 많이 힘들었네. 그럴만했지 뭐."

우리는 일회용 삶을 다시 씻어 중년의 하루를 보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