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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y 24. 2020

시점의 창으로 본 그녀의 세계

 채식주의자 (by 한강)... 첫번째 필터


영혜...

이해가 어려운 사람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자의식을 가진 이에겐

병리학적 문제를 가진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

글의 마디마디에

한강 작가의 장치가 있다.

그녀가 제시하는 렌즈들로 영혜를 바라보면,

채식주의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그림과 사진은 빛의 과학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문학’은,‘시점의 과학’ 이랄까. 프리즘을 통해 빛이 분광되듯, 서술자, 등장인물, 독자 사이에서 시점이란 필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통찰, 감동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이 시점의 운용이야말로 나를 전율로 잡아 끄는 힘, 작품 ‘채식주의자’의 정수이다.


 작가는 시점을 이용하여 인물 사이의 원근감을  구성한다.


‘나’로 표현되는 영혜의 남편, 적당한 이기심과 세상살이에 편리한 통속성을 가진 이로서, ‘나’로 표현되는 이점으로 회색분자로서의 자기 정당화를 세세히 본인의 목소리로 드러낸다.


또 한 명의 ‘나’로 표현되는 영혜, 세상이 정한 도그마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영혜의 목소리는 독백과 같다. 남편과는 반대의 의미로 ‘나’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세세한 정보가 없다. 말이 툭툭 끊긴다. 생각의 편린을 연결고리 없이 조각조각 내뱉는다. 일반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다


‘그’로 표현되는 영혜의 형부, 예술가이기에 세상의 틀에서 다소 자유롭다. 세상의 틀은 그의 미적 열정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미적 열정으로 세상의 눈에 폐륜으로 비칠 일을 자행하지만 서술자의 음성으로 ‘그’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가 분출하는 심미적 열망을 지켜볼 뿐이다. 형부의 눈이라는 렌즈에 잡히는 영혜의 모습은 날것 그대로의 영혜다. 영혜에 대한 어떠한 판단 기준 없이 마치 거울을 매개로 투영시켜 주는 느낌이다.


‘그녀’로 표현되는 영혜의 언니. 서술자는 카메라의 초점을 좀 더 줌인하여 그녀에게 맞춘다. 세상의 틀에 갇힌 자발적 희생자로서, 상대적으로 수혜자의 입장을 가진 영혜의 남편과, 또한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영혜와 각각 다른 의미로서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생각의 흐름을 탐색해 가는 서술자의 시각은 그녀가 스스로에게 적용한 틀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고달프게 하는지 드러낸다.


 인물들은 세상의 틀이라는 한 범주 속에서 각 극을 이루는 인물 영혜와 그 남편 사이를 연결하는 스펙트럼 어딘가에 소재하고 있다.
작가는 남편(세상의 통속적 시각)의 렌즈로 영혜의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드러내고, 형부의 눈을 통해 관념의 기준 없이 그녀의 모습을 비춘다. 또한 대척점을 이루는 언니의 삶에 대비되는 그 모습은 세상의 틀에 한없이 자유롭다. 영혜의 행동은 남편 형부 언니의 시각으로 순서대로 옮겨가며 그 실체를 단계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책 한 권을 완독 했을 때에야 영혜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영혜의 채식주의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존 과정 자체가 폭력이기 때문이다. 타 존재의 습식을 통해 존재를 영위하는 그들...
러한 맥락 속에서 영혜의 습식 거부는 마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당연한 귀결이다.
세상이 사람들에게 원하는 기대심리, 세상의 틀도  인간에게는 폭력이다.
세상의 틀을 벗어난 영혜를 보는 세상은 가혹하다.
세상에 틀에 충실한 영혜 언니의 삶은 너무나 고단하다.
세상의 틀은 문명의 기본 요건이기에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러한 '폭력'은 원죄 일지 모르겠다

 미니멀리즘 기법이 흥미롭다.
영혜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여 서술하지 않는다. 카메라 기법 중 중심 대상에만 점을 맞추는 '아웃포커스'와 유사하다.
마치 다른 인물들은 영혜라는 인물을 알리기 위한 장치이듯...
영혜를 보여주기 위한 미니멀리즘은 절묘한 선택이다.


 

 습식 거부로 죽어가는 영혜는 불행하거나 가여운 이가 아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관습의 '틀' '폭력' 즉 원죄에서 벗어난 자유인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자아가 원하는 이상이 달콤한 죽음을 맞이하는  영혜의 모습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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