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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 느영나영 나무

제주일상 그림일기 5

by Lara 유현정



제주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규칙적인 일상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일상이 반복되면 루틴이 되고, 루틴은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어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 주기 때문이다. 일상이란 한 번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하면 너무 쉽게 무너져 내다. 서울에서의 일상이 엉망이었기에, 제주에선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도록 의식적으로 애쓰고 있다. 바다를 건너온 것뿐인데, 환경의 변화는 마음을 다잡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일상과 함께 사람들과의 관계도 당한 거리를 확보하도록 신경 쓰고 있다. 너무 멀거나 가깝지 않게, 너무 소원해지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말이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리움이 쌓일 때까지 만남을 서두르지 말라." 나는 어떤 말씀보다도 스님의 이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인생길에서 인간관계가 서툴고 혼란스러울 때, 이정표를 만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만남은 그리움의 크기만큼 반가운 것이 된다. 그리움이 쌓일 겨를이 없는 만남은 시시하다 못해 심지어 지겨워질 때도 있다.


싱글 타임


서귀포에서 만난 은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를 하고 있는 그녀는,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영국인 남자 친구와 동거 중이다. 나는 어느 날 실험예술 축제에 그녀 커플을 초대하였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그녀는 혼자 나와 있었다. 그날은 휴일이었기에 나는 의아했다. 그녀는 서로가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며,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끔씩 싱글 타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말 현명한 플이었다. 홀로 서지 못하면, 함께 잘 살 수 없다. 관계의 적정한 거리는 친구뿐 아니라 연인과 부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림 1> 참꽃과 조랑말


나는 제주에서 싱글 타임을 보내다가 문득 친구가 그리워졌다. 한동안 서로 바빠 남이 뜸해서 궁금하던 차였다. 구란 그리움이 차오르면 안부를 묻고, 시간이 가능하면 얼굴을 마주하고 수다를 떠는 사이다. 그리움을 안고 만나는 친구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흠뻑 비를 맞아 영혼을 적돌아오면, 다시 홀로 독야청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까이에 살며 수시로 나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동네의 언니와 동생 바로 그런 친구들이다.


우리는 함께 머체왓 숲길을 걸었다. 머체왓은 머체(돌)로 이루어진 왓(밭)이란 제주어이다. 제주에 돌 없는 밭이 어디 있까마는, 이곳은 오죽이나 많았을까 싶다. 숲길 예전과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여러 산책 코스를 개발하며 길을 새로 만든 게 아닐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걷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서중천에 다다랐다. 용암이 흘러내린 계곡을 타고 한라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숲을 통과하는 길이다. 하얗고 커다란 암석이 장관을 연출하는 계곡을 따라 숲길이 이어졌다.


동생이 먼저 제주참꽃을 알아보았다. 한때 숲 해설사로 일한 적이 있는 동생은 언제나 우리의 숲길 안내자다. 예전부터 진달래는 먹을 수 있다 하여 참꽃이라 불렀는데, 진달래과에 속하는 제주참꽃은 다른 나무라고 한다. 잎이 꽃보다 먼저 돋아나고, 꽃은 진달래보다 붉다. 참꽃은 잎이 세 개씩 모여 나는 모습이 특이해서 쉽게 눈에 띄었다.

제주도는 참꽃에 삼다도의 의미를 부여하여 도화로 결정했다고 한다.


머체왓은 참꽃의 군락지였다. 아직은 때가 일러 꽃봉오리만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만, 우리는 참꽃 나무를 찾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저벅저벅 소리가 들려왔다. 머나! 마부도 없이 조랑말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오는 게 아닌가. 숲에서 방목하는 말인 듯, 아담한 크기의 몸엔 얼룩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부터 챙겼다. 카메라의 터치가 잘 되지 않아 음성으로 "촬영"을 외쳤다. 순간 앞만 보고 직진하던 녀석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눈을 맞추며 나의 교감을 나누었다.


참으로 고마운 머체왓이구나! 참꽃으로도 모자라 조랑말을 등장시키다니, 머체왓이 마련한 서프라이즈 선물에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거워졌다. 숲은 꽃과 나무에 곤충과 새, 노루와 조랑말까지 모두를 끌어안는다. 나는 체왓의 넉넉한 품에 잠시 안겼을 뿐인데, 기쁨은 기대 이상이었다. 산책을 끝내고 밥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절로 경쾌해졌다.


머체왓의 선물, 참꽃 나무와 조랑말 한 쌍



<그림 2> 느영 나영 나무


서울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도 나는 머체왓이 궁금했다. 꽃이 만개하기 전에 돌아가야지 하며 제주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제주로 아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머체왓이었건만, 참꽃은 그 사이 다 피고 지고 겨우 시든 흔적만 몇 가닥 매달고 있었다. 참꽃을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혼자만의 산책을 선택했데, 기대가 무너져서 서운하고 허전했다.


숲길의 마지막은 다시 초입으로 이어졌다. 눈길이 머체왓의 너른 벌판로 내달렸다. 지난번에는 유채가 노랗게 피어 더니만, 지금은 모두 깎이고 간간이 개양귀비와 수레국화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멀리 한라산 자락이 아스라이 펼쳐졌다. 허허벌판의 야트막한 언덕에는 모진 제주 바람을 온몸으로 버텨냈을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고 는 것만 같았다. 때 이른 불볕이 따가운 날씨였다. 망설임도 잠시, 나는 느새 땡볕을 뚫고 언덕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느영 나영(너랑 나랑) 나무


나무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느영 나영이었던 게로구나. 멀리서 볼 때는 한 몸으로 보였는데, 그나마 둘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런데 오른쪽의 큰 나무는 그런대로 멀쩡했지만, 왼쪽의 작은 나무는 가지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한겨울 꽃들이 숨어드는 계절에 차디찬 북서풍이 벌판을 휘몰아쳤을 테지. 두 그루가 서로 의지하며 버텨냈을 고난의 시간들이 가지에 고스란히 새겨 있었다.


두 그루의 나무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연인이나 부부일 수도 혹은 부자나 모녀일 수도 있을 것이, 아니면 절친이거나 스승과 제자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작은 나무가 나의 육신인 커다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움츠러든 마음 같았다. 나는 작은 기둥을 끌어 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다행히도 새로 뻗은 가지는 하늘을 향해 기운차게 뻗어 올랐고, 햇살을 듬뿍 받은 나뭇잎은 삶을 찬미하고 있었다.


길은 거꾸로 걸으면 전혀 낯선 길이 된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걷던 길을 이번에는 홀로 반대로 걸어 보았다. 길의 마지막에 다다른 나무는 그렇게 서 만나게 된 것이다. 운명은 꼭 필요한 순간에 내게로 걸어와 말을 건다. 가녀린 작은 나무는 이제 자기처럼 기운을 내라고 속삭이고, 나는 다시 희망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숲은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에는 다정하고 따스한 기운을 건네 주었, 나는 다시 어설 일상의 힘을 얻었다.


한라산과 느영 나영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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