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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걷기 좋은 날

제주일상 그림일기 4

by Lara 유현정 May 01. 2022


날로 신록이 싱그럽다.

앞다투어 피어나던 봄꽃들의 잔치가 끝나고 여름꽃들이 들어서기까지, 그 사이를 비집고 연둣빛 세상이 펼쳐졌다. 4월 초부터 시작된 신록은 이제 절정을 넘어 녹음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신록은 어릴수록 더 연하고 부드러워 감탄을 자아낸다. 아직은 쌀쌀하다고 느껴질 때, 마치 갓난아기 세상 밖으로 나오려 용을 쓰듯 단단한 가지의 속살을 뚫고 올라오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가로수 새순을 잊을 수가 없다. 생명의 탄생은 늘 그렇게 경이롭고 신비하게 다가온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화사한 꽃보다 연둣빛 신록 예뻐 보이 시작했다. 꽃에게만 향하던 시선이 평범한 나뭇잎에게로 마음을 돌린 것은 아마도 인생 절반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찌 됐든 맘때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이 떠오른다. 신록 청춘 예찬했던 , 무나 강렬해서 지금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는 문장들이. 직이 그 당시엔 젊음을 찬미하는 어른들의 평가가 과하다 싶었다. 그러나 지나 보니 알겠더라. 그 시절이 얼마나 호시절인 줄을. 그 안에 있을 때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국어 선생님도 이해시키지 못한 것을 세월이 가르쳐주었다.


나는 오늘 유튜브에서 이양하의 <신록 예찬>을 찾아들었다. 요즘은 책을 읽어주는 유튜버가 많아서 두 눈을 감고 누워서도 들을 수 있으니 참으로 편한 세상이다. 읽고 싶은 책을 검색만 하면 줄줄이 쏟아진다. <신록 예찬> 비록 짧은 글이었지만, 구구절절이 진리요 명문이 더구나 름다웠다. 인생의 구비구비를 돌고 나서야 온전히 작가의 글에 동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봄바람을 살랑거리며 내게 그럽게 다가왔장 중에 몇 줄 받아 적었다.



명랑한 5월의 하늘 아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이 즈음의 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 이 양하, <신록예찬> -






<그림> 유의 숲길


한 바탕 비가 쏟아진 다음 날이었다. 날이 활짝 개이며 공기가 쾌적했다. 런 날이면 나는 숲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전에 민화를 그리 나서 시간이 느슨해진 나는, 문득 혼자라도 숲길이 걷고 싶어졌다. 요즘 다시 하루 만보 걷기를 시작했기에 더없이 좋은 생각이었다. 그러잖아도 속절없이 벚꽃이 지고 난 자리에 날로 힘차게 자라나는 잎을 바라보며, 숲 속의 나무들이 앞다투어 물을 올리며 피워내는 신록의 향연 싶었다.


나는 치유의 숲으로 차를 몰았다. 귀포 치유의 숲은 숲을 보호하기 위해 인원을 제한하며 예약제로 운영 . 하지만 주민을 위해서는 언제든 들락거릴 수 있 산책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입구만 다를 뿐 들어서면 모든 숲길이 서로 통하기에 맘껏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혼자 걷기에 적당하고 제주 도민의 특권도 누릴 수 있는 숲이라 나는 틈틈이 애용하곤 한다.


산록도로 길가에 마련된 주차 라인에 차를 웠다. 널찍한 정구를 피해 뒤쪽에 마련된 호근 산책로로 들어섰다.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애용하던 숲길은 소박해서 더 다정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가득 쏟아졌다. 발밑에 아롱거리는 그림자를 즈려밟으며 영롱한 새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  눈을 크게 뜨고 다양한 신록의 모습다. 한가로이 거니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입가에는 미소가 자꾸 피어났다. 나는 이렇게 온전 숲과 교감하며 홀로 걷는 시간을 사랑한다. 번잡했던 마음이 고 충만기쁨 차오르는 힐링의 시간이.


피톤치드가 가득한 편백나무 숲에서 숨을 고르고, 잠시 오르막 길을 오르자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났다. 간혹 아직도 싱한 꽃을 매달고 있는 나무 아래로 통으로 떨어진 동백꽃들이 늘어서 길가를 장식했다. 가끔씩 서어나무 눈길을 끌었다. 숲의 최상림을 이루는 서어나무는 근육질의 몸매가 무척 단단 멋들어져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이다. 대다수의 나무들은 이끼나 콩개, 아이비 같은 덩굴식물에게 제 몸을 내어주며 공생하고 있었다. 목질을 가진 어느 덩굴 버팀목이 되어주는 나무에게 사랑과 감사 음을 듬뿍 담아 몸으로 하트 그리며 끌어안기도 하였다.


언뜻 노루 뒷모습이 포착되었다. 나의 발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듯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시 얼마쯤 걸어가는데,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노루 가족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게 보였다. 반가웠다. 나는 얼른 카메라부터 준비했다. 그러나 살금살금 다가음에 두 마리는 재빨리 자리를 뜨고 말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마리는 나의 인기척에도 태연다. 까이 다가가 보니 아기 숫노루였다. 아직 어려서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무 부드럽고 맛난 풀을 포기할 수 없는 건지, 흘끔리며 나를 보면서 새로 돋아난 조릿대 잎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각사각 소리까지 내면서 먹는 모습이 우리 집 강아지 호두를 닮아 귀여웠다. 아기 노루의 맑고 깊은 두 눈에는 순함이 가득했다. 아기 노루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었지만, 엄마와 아빠 노루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목숨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니까.


나는 아기 노루의 안녕을 빌며 숲의 반환점을 돌았다. 평탄하게 내려오는 넓은 숲길에는 단풍나무의 연초록 잎이 햇빛을 받아 화사하게 빛났다. 삼나무 군락이 이어졌다. 밑동이 아예 붙어버린 부부 삼나무 다정하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랐다. 숲은 살아있고 변화무, 언제나 그동안 참았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쯤 나는 숲의 부름을 듣고 달려가는 것이다. 숲길구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즐겁지만, 홀로 걸을 때 숲이 건네주는 은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기 노루도 만날 수 있었던 뜻밖의 행운을 안고 내려오 길, 벌써  이야기 다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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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풍경치유의 숲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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