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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n 04. 2023

앗, 배낭이 사라졌다!

<실화소설 1, 프롤로그> 한비야의 후예 김비야


한파가 지속되던 1월 중순의 어느 날이다. 


아직 동도 트기 전인데 카톡 통화음이 계속 울려댔다. 아침잠이 많은 Y 아직 곤하게 잠에 곯아떨어져 자고 있, 부지런한 남편 K는 이미 기상하여 서재로 나간 모양이었다. "이 시간에 나를 깨울 사람이 누구야?" Y는 중얼거리며 옆자리로 더듬더듬 손을 뻗었다. 잘 떠지지도 않는 두 눈을 겨우 비비며 휴대폰을 집어 들여다본 순간, 미국에 있는 언제나 그리운 작은 딸 H2가 아닌가.  


"어어, 잘 지내니?"

"엄마! 나 짐을 잃어버렸어."

"뭐라고?"

"여행하는 도중에 배낭을 도난당했다고!"

"어떻게?"

"공원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깜빡 잠든 사이에.."

"그래서?"

"돈이랑 여권이랑 영주권이랑 텐트랑 일기장까지 모두 사라졌어"

"그럼 남은 거는?"

"핸드폰이랑 입고 있던 옷만 남았지"


순간 Y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비몽사이라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잘 되질 않았다. 아니 이게 현실이라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유분수지,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H2와 멕시코에서 헤어진 지 보름이나 지났을까 하는 시점이었다. 계속 여행을 하겠다는 H2를 과달라하라에 남겨두고 Y와 남편 K는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12월 크리스마스 때까지 3주간 딸아이가 안내하는 멕시코를 이곳저곳 실컷 구경하며 회포를 풀었으니, 만남이 격했던 만큼 헤어짐도 자연스러웠다.


Y는 서울로 돌아와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여독고 있는 중이었다. H2는 지난 여름부터 6개월간 지속된 멕시코 여행을 마무리하고, 1월 초에 미국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미국 영주권자는 해외 체류가 6개월만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멕시코에서 제일 가까운 미국의 최남단 플로리다 반도의 마이애미로 들어간 것인데, 이 사달이 난 것이다. H2는 도보로 미국 동부를 여행하여 3월 말 애틀랜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거기서 시작하는 트레일을 따라 캐나다 국경까지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단하는 것이 해의 목표였다.  




Y는 배포가 큰 여자였다. 아니 어쩌면 자식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는 것을 이미 영악하게 파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몇몇은 대범하거나 지혜롭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H2가 트레킹 얘기를 당당하게 꺼냈을 때, 사실 속으로 뜨끔하였다. 뭔가 돌덩이 같은 것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잔잔하던 일상에 걱정거리 하나가 크게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도 겉으로 어두운 내색을 비치거나, 큰소리로 뜯어말리거나,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도 않는 쓸데없는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딸아이를 이해하고 지지해 줄까에 골몰했다.


딸만 둘인 집안에서 둘째인 H2는 '김비야'로 불렸다. 혼자서 세상을 겁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양이, 마치 걸어서 지구를 세 바퀴 반이나 돌았다는 한비야를 똑 닮았기 때문이다. 사실 Y는 누구보다도 한비야를 좋아했다. 그녀의 삶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젊어서는 세계를 제 집처럼 여행하는 용기와 친화력을, 중년에는 세계 난민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는 강인한 따스함을, 말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었다. Y는 한비야가 걸어간 길을 어쩌면 가장 고 싶은 삶으로 여기고 있었다.  


혹시 한비야에 대한 이런 흠모가 H2에게로 전이된 것은 아니었을까. Y를 잘 아는 친구들은 H2가 엄마의 꿈을 대신해 주는 거라고 여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Y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젊어서야 당연히 한비야의 삶만 눈에 들어왔지만, 요즘은 자연스레 한비야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늘 오지로 전쟁터 달려 나가는 딸을 생각하면, 그 엄마는 하루라도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을까. Y는 새삼 한비야 엄마의 심정이 되어 뜬 눈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Y는 생각에 잠겼다. 두 아이는 인생에서 커다란 선물이자 동시에 버거운 짐이었다. Y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허약했다. 갓난아이일 때는 엄마의 젖이 말라 강제로 배를 곯았고, 학교 갈 나이가 되어서는 아침상을 받으면 밥이 먹기 싫어서 배가 아팠다. 살이 오르지 않아 항상 빼빼 말랐고, 머리숱은 누구보다도 풍성하여 두 갈래로 땋고 나면 말괄량이 삐삐가 따로 없었다. 학 초에 학교에서 내주는 가정환경조사서의 건강상태 항목에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약체질에 체크가 되곤 하였다.


그랬던 Y가 아이를 둘씩이나 낳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첫 아이 H1이야 아무런 준비 없이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동생까지 낳는다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더구나 H1을 낳으면서 고생한 얘기는 지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랄 얘기다. 양수가 터지면서 24시간 진통을 하다가 태아가 위급하다는 의사의 단에 따라 제왕절개를 단행하였으니 말이다. 그것뿐이던가. 임신 기간 내내 지속된 입덧은 또 어쩌란 말인가.

 

그 당시 한국 사회는 베비비부머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출산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전국을 도배하던 시기였다. 주변의 젊은 부부는 모두가 두 명의 자녀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더 나아가서 "한 집 건너 하나씩만 낳자"라는 표어까지 나오면서 자녀 1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Y는 이제야 자신에게 걸맞은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스스로 무너뜨릴 줄이야. 큰 딸이 자라나는 동안 Y는 H1이 딸이라는 사실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나중에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 혼자 남겨질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안 되고 불쌍했다. 만일 H1이 아들이었다면 하지도 않았을 고민을 거듭 곱씹게 되었다. 그때쯤은 이미 입덧 출산의 고통 희미해잊히고 있을 때였다. "에라, 딸이든 아들이든 H1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자!" 형제를 만들어 주는 것은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거라 확신하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Y는 갑자기 H2를 낳은 이후로 거의 애정 결핍에 시달린 H1 때문에 울컥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자라준 딸이 고마웠다. 세상 밖으로만 나도는 H2와 다르게 한국에서 그럭저럭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H1이 효녀로 보이기까지 했다. 한집에 살면서 사소한 일로 부딪히며 티격태격 하기는 하지만, 자라면서 큰 걱정을 끼친 적이 없는 아이였다. Y는 얼른 달려가 아직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H1의 엉덩이를 두들겨주었다. 애정의 표현이었건만, H1은 화들짝 놀라 손을 뿌리친다. 새침한 건 여전하다.




Y는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지만, H2 걱정이 앞을 가렸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새삼 거북이가 등에 짐짝을 진 것처럼 커다란 업보를 짊어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자식이 되어서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보다 더한 불효는 없었. H2가 이국만리 떨어진 곳에서 홀홀단신으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을 때, 진즉부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얼음판을 디디는 것처럼 항상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부처님은 "살다가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 때,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하셨다. Y는 그 가르침에 따라 매사 불평하고 자책하는 대신에 감사할 거리를 찾았다. 사실 감사할 거리는 사방에 널려 있었고, 가장 먼저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쉬운 일이다. 그러고 보 H2가 비록 전재산은 잃었지만, 몸을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또 이 고난을 함께 의논할 남편 K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큰 산을 앞에 두고 Y와 K는 평소답지 않게 동지애로 똘똘 뭉쳤다. 부부애는 무탈할 때보다는 위기 앞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것도 마이애미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역부족이었다.


아아,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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